여성·문화네트워크 주최 ‘워킹대디 쇼퍼런스’

한국·미국·스웨덴 워킹대디 육아 경험담 공유

남성 육아참여 확대? 제도·유연성·인식 변화 3박자 갖춰져야

 

21일 서울 종로구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5 워킹대디 쇼퍼런스 ‘나는 행복한 워킹 대디’ 행사에서 마티아스(왼쪽부터) 주한스웨덴대사관 참사관, 대 킴 주한미국대사관 이등서기관과 유재구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이사, 김용범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담당관, 정우열 생각과 느낌 원장이 육아 경험담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1일 서울 종로구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5 워킹대디 쇼퍼런스 ‘나는 행복한 워킹 대디’ 행사에서 마티아스(왼쪽부터) 주한스웨덴대사관 참사관, 대 킴 주한미국대사관 이등서기관과 유재구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이사, 김용범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담당관, 정우열 생각과 느낌 원장이 육아 경험담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아이와 과천에 있는 미술관에 갔다가 수유실이 여자화장실 안에만 있다는 것을 알고 당황했어요. 아빠들이 육아에 동참하려면 아직도 넘어야 할 장애물이 너무 많아요.”

김용범(41)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담당관은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마이크로소프트에서 열린 ‘워킹대디 쇼퍼런스: 나는 행복한 워킹대디’ 행사에 참여해 “공공미술관조차 육아 관련 시설은 대부분 엄마에게 맞춰져 있어 아빠들이 자녀와 함께 외출 한 번 하기조차 힘들다”며 ‘아빠 육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사)여성·문화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이번 행사는 육아휴직 경험이 있거나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는 세계 각국 아빠들이 모여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고, 남성 육아참여 확대와 일·가정 양립 문화 정착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장은 육아휴직을 준비 중인 아빠부터 예비 아빠와 관련 전문가까지 100여명에 달하는 참석자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한국·미국·스웨덴 아빠들의 육아 노하우는?

특히 한국을 비롯해 미국, 스웨덴 아빠 5인이 참여한 쇼퍼런스 순서에선 아빠들을 위한 실질적인 조언과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제언들이 쏟아졌다. 관객석에서 질문이 쏟아져 남성들의 육아 참여에 대한 관심도 엿볼 수 있었다.

두 딸을 키우며 두 번의 육아휴직을 경험한 마티아스 주(41) 주한스웨덴대사관 참사관은 “육아휴직을 한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육아휴직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을 하며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아내가 일·가정 양립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 가족이 단단한 하나의 팀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면서 “스웨덴의 육아휴직 정책과 ‘아빠 육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스웨덴의 육아휴직은 최장 18개월이며 그 중 최소 3개월은 남성이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육아휴직 급여도 통상임금의 70~80%를 지급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빠의 달’ 1개월(통상임금 100%·최대 15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육아휴직 기간은 통상임금의 최대 40%(100만원)만 지급한다.

2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한국계 미국인인 대 킴(40) 주한미국대사관 이등서기관은 “외교관이라는 직업이 2~3년마다 다른 나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가족들이 겪는 불편함이 크기 때문에 퇴근을 하는 오후 4시 이후에는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며 “미국대사관의 경우, 직원이 휴가서를 제출하면 상사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보내주는 등 유연한 기업문화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남성들의 육아 참여가 확산되려면 “아빠가 주양육자가 되는 일이 ‘쿨하지 않다’고 보는 인식과 전통적인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담고 있는 드라마와 언론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진국 아빠들과는 달리 한국 아빠들은 여전히 육아에 참여하기 힘든 국내 현실과 아빠 육아를 하면서 겪은 고충을 쏟아냈다.

김용범(41)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담당관은 지난해 11월 아내가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지방으로 발령이 난 바람에 4개월간의 육아휴직을 내고 지방으로 함께 내려갔다. 지금은 아내가 바톤을 이어 받아 육아휴직 중이다. 그는 “국공립어린이집은 대기자가 많아 첫째를 어쩔 수 없이 민간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데 두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왕복하는 일을 하다보면 지칠 수 밖에 없다”며 “정책 입안자들이 한 달에 1시간만이라도 양육을 체험하거나 어린이집 대기 신청서만 써 봐도 정책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1일 서울 종로구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5 워킹대디 쇼퍼런스 ‘나는 행복한 워킹 대디’ 참가자들이 2부 쇼퍼런스에서 패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1일 서울 종로구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5 워킹대디 쇼퍼런스 ‘나는 행복한 워킹 대디’ 참가자들이 2부 쇼퍼런스에서 패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보와 고충 나눌 ‘아빠 육아 플랫폼’ 필요

유재구(45)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이사는 뒤늦게 육아에 적극 참여한 케이스다. 유 이사는 “어느 날 둘째 딸이 한글을 읽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아빠로서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 아내와 딸에게 미안해 육아에 적극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그가 육아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후 처음 시작한 것은 주말여행이었다. 특히 ‘스토리 여행’이라고 이름붙인 여행 방식으로 자녀와 교감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짠 스토리 여행은 여행을 떠나기 전 계획을 세우면서 방문할 장소를 담은 사진을 슬라이드에 담아 아이에게 소개하고,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과 아이에게 평소 하고 싶었던 말을 담아 슬라이드에 담고 함께 감상하며 소감을 나누는 방식이다. 유 이사는 “주말여행,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 가족 대화의 시간을 통해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과 충분히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며 “육아에 관심 있는 아빠들은 주변에서 육아 정보를 얻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곤 하는데, 육아, 자녀교육 책을 쓴 저자 강의를 찾아가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노하우도 소개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정우열 생각과 느낌 원장은 2년 전부터 육아를 하는 아빠들의 모임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모임이 활성화돼 있는 엄마들과는 달리 아빠들은 만나서 고충을 나눌 공간이 전무하다. 이 때문에 ‘육아 우울증’에 시달리는 남성들도 있다고 했다. 그는 “남성들은 육아휴직을 하는 것도 어렵지만 육아휴직 후에 아이를 기르는 이론부터 감정콘트롤 방법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아빠를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에이미 잭슨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대표는 ‘행복한 워킹패밀리’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서 “가정과 직장에서의 ‘유연성’이야말로 여성의 남성의 육아 참여로 이어지는 중요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직장 내에서는 탄력적으로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기업 문화가 조성되고, 가정에서는 엄마도 일하고, 아빠도 육아하는 유연한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양성평등 증진과 남성 육아 참여를 늘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 네퍼 주한미국공관차석은 축사를 통해 “남성의 육아 참여 확대는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관심을 갖는 글로벌 이슈”라며 “육아에 적극 참여하고 일·가정을 양립하는 아빠들이 모여 경험담을 나누는 이런 자리가 남성 육아휴직과 전 세계 아빠들의 일과 삶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릴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제발표를 통해 “우선 장시간 근로 관행을 개선하고 경직된 근로문화를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바꿔나가며 아빠들이 육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만들고 교육프로그램을 확산해 인식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용현 여성가족부 차관은 “가족사랑의 날과 ‘아빠의 달’ 등 제도가 도입되면서 올해 상반기 남성육아휴직자 수가 지난해 보다 40%나 늘었다”며 “이번 행사를 계기로 육아가 여성만의 몫이 아니라 부모가 함께해야 할 일이고, 이를 통해 남성과 기업, 사회 전체가 더 큰 행복과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여성문화네트워크가 주최하고 여성가족부, 여성신문, 주한미국대사관, 주한스웨덴대사관, 한국마이크로소프트가 후원하는 워킹대디 쇼퍼런스는 청주, 춘천, 강릉, 광주에서도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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