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여학생 “한의사가 부모 없을 때만 속옷 안으로 손 넣고

만지고 눌러… 한방 치료 후 우울증 약 복용하면서 학교 다녀”

환자단체, 병원 성추행 방지법 입법청원운동

“법이 나를 보호해줄 거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한의사 아저씨에게 무죄가 선고됐을 때 큰 충격을 받았어요. 분명히 판사 아저씨도 ‘한의사가 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이해가 안 가요.”

김민서(16)양은 2년 전 교통사고를 당한 후 치료차 부모와 함께 한의원을 찾았다. 민서는 한의원에서 17차례 진료를 받았고, 이 중 10차례는 부모와 동행했다. 민서는 부모와 함께 있을 때는 한의사에게 일반적인 침술과 온열치료로 진료를 받았다.

그런데 부모와 동행하지 않은 7차례의 진료는 방식이 전혀 달랐다. 아무도 없는 진료실에서 민서에게는 매번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간호사를 밖으로 내보낸 한의사는 “내가 옷을 벗겨주겠다”며 민서가 입은 바지를 직접 벗겼다. 한의학의 수기 치료를 처음 접한 민서는 한의사의 행동을 막을 수 없었다. 그 뒤 한의사가 진행한 수기치료는 더 큰 충격이었다. 그는 민서의 속옷 안으로 손을 넣고 만지고 누르는 행위를 한동안 반복했다.

민서는 의료 지식도 없고, 성추행에 대한 상식도 부족해 선뜻 문제 제기를 못했다. 가족에게 말하는 것도 꺼렸다. 만약 한의사가 나쁜 의도가 없다면 일이 커질 경우 무고한 사람에게 큰 피해가 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악몽 같던 한방 치료가 끝난 후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매일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을 만큼 의욕이 ‘제로’ 상태였다. 민서는 “우울증 약을 복용하면서 학교를 다녔다”고 울먹였다. 자해까지 할 만큼 상태가 심각해진 후에야 부모에게 사실을 알렸다.

권용진 국립중앙의료원 기획조정실장은 “한의학 이론에 치료법이 있어도 나이 어린 환자에게 그런 방식을 사용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심지어 보호자도, 간호사도 없을 때만 그런 치료를 했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 실장은 “환자단체뿐 아니라 여성단체의 협력이 필요하다. 한의사협회도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여성 환자가 이런 일을 겪으면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진료를 빙자한 성추행 예방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환자단체는 민서의 증언을 계기로 가칭 진료빙자성추행방지법(일명 민서법) 제정에 나섰다. 안 대표는 “의료인의 정당한 진료를 보장하고 환자의 성추행 오해도 방지해 서로 신뢰하는 의료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단체는 현재 진료빙자성추행방지법 청원 운동을 준비 중이다. 법안에는 의료인이 성추행 우려가 있는 신체 부위를 진료할 때는 환자에게 진료할 신체 부위, 진료 이유, 원치 않으면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의무적으로 사전 고지하거나 진료실에 제3자를 배석시키는 내용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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