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내일을 위한 시간’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했다. 영화는 주인공 산드라가 자신의 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1박 2일 동안의 여정을 담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벨기에의 작은 마을이다. 우울증으로 병가를 사용한 산드라는 복직을 앞두고 동료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산드라의 복직과 1,000유로의 성과급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투표를 실시했다는 것이다. 투표 결과, 산드라가 아닌 성과급을 선택한 동료들. 1,000유로의 가치, 우리 돈으로 약 125만원은 동료들에게도 꼭 필요한 돈이다. 그러나 투표의 공정성이 문제제기 되고, 다가오는 월요일에 재투표를 하기로 한다.

 

영화는 월요일 재투표를 앞두고 산드라가 주말 동안 16명의 동료를 찾아가 성과급 대신 자신을 선택해 달라고 호소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다. 다큐보다 더 지독한 현실을 보는 듯했다. 동료들은 각자의 사정이 있다. 한 동료가 말한다. “네 복직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보너스를 택한 것뿐이야. 양자택일을 강요한 건 사장이야.”

사장은 왜 양자택일을 강요했을까? 최소 인력으로 공장을 유지하면서 필요한 경우 초과근무를 통해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사장. 산드라가 휴직한 사이에 그의 업무를 다른 직원들이 나눠 맡았는데 필요할 때 초과근무만 하면 공장이 돌아가더라는 경험.

재투표 결과는 8 대 8. 과반의 찬성을 얻지 못한 투표 결과에 따라 산드라가 회사를 떠나려는 순간, 사장은 산드라를 불러 복직을 약속한다. 해피엔딩인가 생각하는 순간, 사장은 산드라를 복직시키는 대신 계약직 근로자를 해고하겠다고 말한다. 영화는 비정규직의 문제로 다시 들어간다. “남을 해고시키고 복직할 순 없어요.” 마지막에 산드라가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일자리를 양보하고 공장을 나서는 장면이야말로 가장 판타지에 가까웠다.

17명이 근무하는 작은 공장에서 벌어지는 산드라의 복직을 둘러싼 1박 2일의 여정은 현대사회의 노동문제를 집약적으로 다루고 있다. ‘보편적인’ 노동문제를 다루는 영화에서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는 흔치 않다. 이 영화는 여성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가를 질문하지 않는다. 남편은 산드라에게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하며, 산드라가 적극적으로 동료들을 만나고 설득하도록 지원한다. 가족에게 산드라의 수입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아쉬운 ‘반찬값’이 아니다. 그렇다면 산드라가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고통을 느끼면서도 동료들을 한 명씩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성별 분업은 현실이 아니라 이상(ideal)에 가깝다. 여기서 우리는 맞벌이가 보편성을 획득한 현대의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보편적인’ 노동문제를 다루는 영화에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유가 아닐까.

최대한 인력을 감축하고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사업주. 성과급과 시간외근무를 통해서라도 소득을 보전해야만 하는 근로자. 같이 일하면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정규직의 고용 안전판이 되는 현실. 영화처럼 현실에서도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는 근로자들이 제한된 파이를 놓고 경쟁하는 것으로 재현된다. 근로자들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것이다.

앞으로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는 일자리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일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알 지니는 “미국 전역에서 하루 8시간, 5일제 근무가 대규모로 시행되기 시작한 것은 이타주의나 적극적 행동주의, 번영주의 때문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경제 대공황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명백했다. 동일 근무량을 놓고 노동자 1인당 근무시간을 줄이면 더 많은 사람들을 고용할 수 있었고 그만큼 실업률을 낮출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근로시간 단축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일자리 나누기, 일·가정 양립 등 국가의 당면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의 장시간 근로를 하고 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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