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여성을 노래하다』 낸 신영숙씨

독신의 여장군 조신성, 여성 독립군 오광심,

첫 을밀대 고공투쟁 강주룡 등 민족 일깨운 여성 독립운동가들

 

신영숙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기획위원장은 “독립을 위해 온몸을 던진 여성들의 치열한 삶을 시로 간결하게 표현한 것은 역사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가 쉽고 친근하게 느끼기 바랐기 때문”이라며 “중고생들이 교양서로 읽어줬으면 하는 욕심으로 여성사 개론식의 시를 썼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신영숙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기획위원장은 “독립을 위해 온몸을 던진 여성들의 치열한 삶을 시로 간결하게 표현한 것은 역사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가 쉽고 친근하게 느끼기 바랐기 때문”이라며 “중고생들이 교양서로 읽어줬으면 하는 욕심으로 여성사 개론식의 시를 썼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일제강점기에 많은 여성이 온몸을 던져 일제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런데도 항일 여성 독립운동가라면 유관순 열사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까워요.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여성 248명 외에도 이름 없이 살다 간 무명씨들의 희생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해요.”

신영숙(66)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기획위원장이 최근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시로 표현한 『여성이 여성을 노래하다』(늘품플러스)를 냈다. 신씨는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이뤄진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독립을 위해 온몸을 던진 여성들의 치열한 삶을 시로 간결하게 표현한 것은 역사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가 쉽고 친근하게 느끼기 바랐기 때문”이라며 “중고생들이 교양서로 읽어줬으면 하는 욕심으로 책을 냈다”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독립의열투쟁의 여전사’ 남자현부터 ‘조선여성독립운동의 맏딸’ 김마리아까지 항일운동가들의 자취를 여성사 개론식의 시로 재현했다. 자작시 ‘여성도 사람이고 조국이 있다’에서 그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강하고도 강한/ 매몰찬 심기를/ 열의로 불태우며/ 차가운 의지로/ 끝내 해냈다”고 상찬했다. 신씨는 9월 4일 오후 2시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출판기념회를 연다

그는 이화여대 사학과에서 석·박사를 마친 후 30여 년간 근대여성사 연구자로 강단에 섰다. 『한국 근대 여성 63인』을 비롯해 10여 권의 공동 연구서도 냈다. 한국정신대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조사과장으로 위안부와 강제동원 피해자 유해 발굴과 봉환에 힘썼다.

그는 책에 등장하는 여성 독립운동가 중 조신성의 삶을 특히 높이 평가했다. ‘독신의 여장군, 어머니로 기림 받다’는 시를 통해 “여성운동의 대모/ 여장군 조신성”이라고 기렸다. “조신성 선생은 짧은 시간에 불꽃처럼 살다 스러진 것이 아니라 평생 여성과 민족을 위한 발자취를 넓고 깊게 남겼어요. 일찍 결혼했다가 두세 해 만에 혼자가 된 후 재혼도 안 한 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독립투쟁에 온몸을 바쳤지요.”

이와 함께 김원봉의 부인으로 서른넷에 순국한 박차정부터 최초의 볼셰비키 사회주의 혁명가로 1918년 멘셰비키 백군파에게 처형당한 김알렉산드라, 역사상 최초로 을밀대 고공투쟁을 해낸 노동운동가 강주룡까지 우리에게 덜 알려진 사회주의자들의 투쟁사도 시로 재현했다.

그는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과 백범 김구 주석의 비서를 8년간 지낸 이화림을 시로 다루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특히 이화림은 유명한 독립운동가였지만 정부로부터 유공훈장도 못 받고 잊혀갔다. 신씨는 “‘암살’의 전지현에게 실제 롤모델이 있다면 이화림 아닐까”라고 했다. 윤봉길, 이봉창 의사와 함께 활동한 그는 도시락 폭탄을 만들고 투척 현장에도 동행했다. 백범 선생이 조선의용대 여자복무단 부대장을 지낸 그를 『백범일지』에서 단 한 줄도 다루지 않은 것은 앞으로 규명돼야 할 일이라는 지적이다.

“이들 가운데 정정화는 상해 안살림을 도맡아 살았어요. 안살림이 아니라 바로 민족을 살리는 일이었어요. 만약 남성 독립운동가들에게 밥을 해 먹이지 않았으면 굶어 죽었을 거예요. 당연히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해선 곤란하죠. 또 여성들은 군자금 모금, 선무공작방송뿐 아니라 독립투쟁 최일선에서도 투쟁했어요. 총을 들고 싸우다 총탄에 맞아 후유증으로 작고한 박차정이 대표적이죠. 허헌의 딸인 허정숙은 군사학교에서 청년들의 교관을 맡아 무술도 가르치고 의식화도 담당했어요. 독립운동사에서 남성들의 투쟁 못지않게 충분히 기여했는데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