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곧 주인공인 고전 여행기 6편을
저자 특유의 시선으로 읽어내
“길 위에서 삶을 탐구하는 건 인간의 본능”

 

신작 『로드 클래식』을 낸 고미숙씨는 “길 위에서 길 찾기는 여성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며 “남편과 아이로 구성된 가족 삼각형에 지나치게 많은 감정을 투사하지 말아아 한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신작 『로드 클래식』을 낸 고미숙씨는 “길 위에서 길 찾기는 여성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며 “남편과 아이로 구성된 가족 삼각형에 지나치게 많은 감정을 투사하지 말아아 한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의 가장 큰 적은 남성에게 의존하고 싶어하는 속성 같아요. 남성도 여성을 원하고 소유욕에 의존하지만요. 여성은 삶을 그 자체로 완성하려고 하기보다 남성의 시선에 따르려는 속성이 남아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러면 집을 중심으로 삶을 꾸려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남편과 아이로 구성된 가족 삼각형에 지나치게 많은 감정을 투사하지 말아야 해요.”

고전평론가 고미숙(55)씨의 신작 『고미숙의 로드 클래식, 길 위에서 길 찾기』(북드라망)는 집에서 길로 나가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질 것을 권하는 책이다. 고씨는 “바깥과 아무 관계가 없고 모든 욕망이 집을 향하면 병들기 마련”이라며 “가족 삼각형은 남편과 아내, 자녀 모두에게 허약한 유리성이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곤 답이 없다”고 말했다.

 

이 책은 고전문학 중 길이 곧 주인공이자 주제인 『열하일기』 『서유기』 『돈키호테』 『허클베리 핀의 모험』 『그리스인 조르바』 『걸리버 여행기』를 특유의 시선으로 새롭게 읽어낸다. 소년 허클베리 핀에게선 인간의 야생성을, 유쾌하고 생기발랄한 조르바에게선 욕망이나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는 충만한 자유를 배울 수 있다. ‘문장 미학’이 남다른 고씨의 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 6월 26일 서울 중구 인문의역학연구소 감이당에서 만난 고씨는 “책을 덮는 순간 몸의 세포가 살아나서 ‘고전을 읽고 싶다’ ‘그 길을 따라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마음이 독자들에게 생기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며 웃었다.

고씨는 지난해 한 시사월간지에 같은 이름의 여행기를 연재했다. 2003년 이미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낸 그는 “12년 동안 가장 크게 변한 것이 디지털 세계가 열렸다는 점”이라며 “시공간의 장벽이 사라진 인터넷 공간에선 세계가 온통 길로 열려 있는데 오히려 신체는 고착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인생을 길 위에서 접속하고 변용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곤 스마트폰 중독으로 침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고씨는 “『서유기』는 불경을 들고 인도까지 가는 여행”이라며 “오래 전 생짜로 길을 걸은 로드클래식을 읽으니 길 위에서 인생을 배우고 삶을 탐구하는 것이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고씨는 몸을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 여행을 귀찮아하는 유형이다. 그런데 로드클래식을 다시 읽고 여행기를 쓰는 동안 우연히 미국과 캐나다, 중국 여행을 하게 됐다. 저자는 “인간은 자신이 만나는 시공간만큼 다른 삶을 산다는 걸 실감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세대인 20대는 신체가 무력하지만 감응하는 속도가 빨라요. 매일 뉴욕 미드를 접하는 이들은 움직일 때는 살아 있지만 여기서는 세계를 갑갑해하죠. 40대도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지요. 길 위에 나서 부딪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책을 낸 후 고씨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 5월 낭송 로드스쿨을 열었는데 중년 남성부터 10대 재수생, 30대 비혼 처녀까지 다양한 세대가 모였다. 참가자들은 고씨와 함께 『홍루몽』을 석 달간 읽고 세미나를 한 후 오는 10월 고전 배경인 중국 난징으로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다. 현지에서 낭송 동영상을 촬영하고 여행기도 각자 쓸 예정이다. 내년 1월에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 을 읽고 미국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또 무빙비전탐구(moving-vision.tistory.com)를 개설하고 외국어 공부 프로그램인 ‘중구난방’도 꾸렸다.

고씨는 인문학 연구자들의 공동체인 수유연구실을 차릴 무렵인 30대 후반에 해혼(解婚)을 했다. 해혼은 결혼 관계를 풀어준다는 의미다. 고씨는 “결혼의 춘하추동을 겪은 것이 인생의 좋은 공부가 됐다”고 말했다. “‘길 위에서 길을 찾는’ 여행은 자동차를 타고 휙휙 자연을 구경하는 관광이나 소비 위주의 여행과는 달라요. 자본의 회로를 깨고 탈주하는 여행이자 인생과 우주에 대한 큰 질문을 들고 떠나는 여행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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