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아프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습니다. 토할 정도는 아닌데 하루종일 멀미를 하는 것 같습니다. 좋아하던 밥 냄새와 커피향도 싫습니다. 제가 딱 이랬습니다. 뭔지 아시겠죠. 입덧입니다. 보통 입덧은 80%의 임신부가 경험하며 9주 이내에 시작되어 15주 정도가 되면 끝나지만 심한 사람은 출산할 때까지 제대로 먹지 못합니다.

임신 기간에 가장 힘들었던 점을 꼽으라면 저 역시 입덧이었습니다. 정말 고역이었죠. 하지만 입덧은 아기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시애틀의 인문학자이자 생물학자인 프라핏은 임신부에게 음식 섭취를 제한하도록 하여 태아가 독소에 노출되는 것을 막도록 진화한 것이 입덧이라고 말합니다. 독소에 대한 태아의 취약성 정도가 입덧의 기간과 정확히 일치하는 점 등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미국 코넬대학 생물학과 폴 셔먼 교수와 새뮤얼 플락스만 교수는 수천 명의 임산부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임신부의 면역체계가 자연적으로 특정 음식을 거부하는 것은 자궁에서 자라고 있는 아기의 위험을 예방하고, 음식에 존재하는 독소에 대한 방어 반응이 약해진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이유라고 해석했습니다. 입덧은 고통스럽지만 생리적 현상입니다. 사춘기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요. 시간이 지나야 되는 것.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 번은 겪어야 하는 거죠. 

동의보감에서는 임신부가 약하게 타고나면 입덧을 앓는다고 했고, 담음이 있는 여성에게서 입덧이 잘 나타난다고 보고 있습니다. 가벼운 입덧은 생리적으로 볼 수 있지만 심한 입덧은 치료가 필요합니다. 임신 초기 입덧은 태아에게 영향을 주지 않지만 지속되면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기아를 경험한 태아는 나중에 비만과 성인병이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임신부의 건강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지요. 

입덧을 줄이려면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싫어하는 음식은 피하고 싱겁고 담백하게 먹는 것이 좋습니다. 공복 상태는 입덧을 더 심하게 하므로 입맛이 없더라도 조금씩 먹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배부르게 먹거나 밀가루나 기름진 음식을 자주 섭취하는 것은 위장 기능을 더 나쁘게 하므로 입덧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내관혈 자극도 좋습니다. 손목 주름선에서 손가락3개정도 내려온 정중앙을 자극해주는 것입니다. 심한 경우 한의원에 오셔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의원에서는 입덧 완화를 위해 체질에 따라 기를 조화롭게 하고 담음과 열을 조절하는 탕약 처방과 함께 침구치료도 하고 있습니다. 

아기를 오래 기다렸거나 유산을 경험한 분들은 입덧을 반기기도 합니다. 입덧은 아기가 엄마에게 “나 건강히 잘 있어”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입덧이 없다면 엄마는 임신 전과 똑같이 행동하여 태아의 건강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굉장히 중요하고 소중한 신호입니다. 

임신 초기에는 입덧으로 몸은 힘들고, 여러 가지로 불안하기 마련입니다. 동의보감에서는 임신부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마음대로 먹게 하면 낫는다고 했습니다. 임신부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다면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아기와 엄마를 위해 준비해주세요.

* 권소라 원장은 대한형상의학회 정회원으로 학회 편집위원과 동의보감연구회 교수를 역임한 10년 차 한의사다. 현재는 경상남도 진주 신안동에 본디올 호두나무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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