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은 ‘거부권 블랙홀’에 휩쓸릴 가능성 높아
누가 진짜 대한민국의 정치를 죽이고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을 행사한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예정된 본회의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을 행사한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예정된 본회의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메르스 정국에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정국으로 급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 요구(거부권)안을 의결시켰다. 거부권 행사에 대한 핵심 이유는 첫째로 위헌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입법권과 사법부의 심사권을 침해하고 결과적으로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시정 요구권은 역대 국회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됐지만 항상 위헌성 논란이 계속됐고, 지난 2000년 2월에는 본회의에 상정된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성이 있다는 이유로 수정 의결됐다는 것을 지적했다.

둘째 ‘정치권 야합’의 결과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이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충분한 검토 없이 여야가 합의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국회의 민생법안 지연 및 당리당략에만 치우친 연계법안 처리 행태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셋째 집권당에 대한 불신이다. 박 대통령은 여당에 “배신·패권주의”라는 용어를 써가면서 직격탄을 날렸다. 정부에 비협조적인 여당을 겨냥해 “정치적으로 선거 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해주셔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구나 “여당의 원내 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 살리기에 국회의 어떤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간가”고 했다. 심지어 “정치는 국민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겨냥한 것이다. 더 이상 유 대표와 함께할 수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여하튼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수위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했고, 어조도 매우 단호했다. 후반기 정국 경색 우려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정치적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이런 승부는 성공할 수 있을까? 박 대통령은 정치적인 고비마다 승부수를 던져 성공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사적 이익이나 특정 정파를 챙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시엔 국민 눈높이에 맞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가 아직 진정되지 않고 있고, 메르스 한파로 소비가 크게 위축되면서 경제가 침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승부수는 과거와는 다른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일단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걸림돌이다. 한국갤럽의 최근 조사(6월 16~18일)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해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긍정 비율(29%)과 부정 비율(61%) 격차가 32%p로 벌어졌다.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 평가자는 평가의 이유로 ‘메르스 확산 대처 미흡’(33%)을 맨 먼저 꼽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며 국회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승부수가 아니라 무리수인 것 같다. 여당은 대통령의 뜻을 존중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지만 야당은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결하지 않으면 모든 의사 일정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이 나라는 정쟁으로 내몰렸다. 나라의 삼각 축이 굳건한 한 다리를 훼손한 채 휘청거릴 것”이라며 “삼권분립의 헌법정신이 훼손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제 정국은 한동안 ‘거부권 블랙홀’에 휩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권의 이런 행태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다. 박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정치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국민을 위한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과 정치권에 묻는다. 대한민국에 진정 정치가 존재하는가? 누가 진짜 대한민국의 정치를 죽이고 있는가? 대통령도 야당도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데 비판하는 사람은 과연 그런 비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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