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 평등’ 경계하고
시민과 법 내용 공유하는
라운드테이블 마련해야

 

유한킴벌리에 근무하는 유란(왼쪽)씨와 이충재씨가 업무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유한킴벌리에 근무하는 유란(왼쪽)씨와 이충재씨가 업무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정책의 헌법’으로 불리는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 20년 만에 ‘양성평등기본법’(이하 양성평등법)으로 전면 개정돼 1일부터 시행된다. 지금까지 여성정책의 목표가 ‘여성발전’이었다면 양성평등법은 ‘실질적 양성평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양성평등법이 여성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 성차별을 없애고 굳건한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를 개선할 수 있느냐다.

양성평등법은 실질적 성평등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성차별적 관행을 해소하고,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참여와 대우, 모든 영역에서의 평등한 책임과 권리를 공유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공공기관 관리직 목표제 도입과 성희롱 범위 확대, 부성권 보장 등이 눈에 띈다.

최금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은 “성 주류화가 입법화되고, 여성친화도시 조성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등 여성정책의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에 대해 환영한다”면서도 “다만 ‘성’이 특화되지 않음으로써 여성 인재 양성, 여성 대표성 강화 등의 규정은 있지만 실행이 이원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관련 정책이 타 부처, 지방자치단체와 잘 연계될 수 있도록 법적 보완이 필요하며, 시·도에서 새롭게 지정되는 양성평등정책 전담 인력이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 집행을 담당하는 여성가족부는 “기존 여성정책과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모든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와 책임, 참여 기회를 보장해 여성과 남성이 함께 만드는 양성평등 사회를 실현하는데 있다”고 양성평등법 취지를 밝혔다. 특히 여가부가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부성권, 남성의 참여다. 양성평등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을 위한 가치라는 점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략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차별 해소를 위한 남성의 참여는 필요하지만, 남성의 참여를 유도해 이뤄지는 ‘기계적 성평등’, 즉 여성과 남성이 50대 50대로 나누는 것이 성평등이라고 오인될 수 있다”며 “성평등은 성불평등과 차별 해소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왜곡된 성평등 인식으로 역차별과 여성혐오 등 페미니즘과 여성정책에 대한 백래시(backlash·반발)가 심각한 상황에서 기계적 성평등에 중점을 두는 것이 자칫 역차별에 대한 오해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법의 혜택과 영향을 받는 여성과 남성 가운데는 법 내용은커녕 성평등이 무엇인지, 왜 성평등이 필요한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정식 교육을 받은 경험도 적고, 교육을 받아도 일회성으로 끝나거나 성희롱·성매매 등 인권 부분 정보만 얻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강선미 하랑성평등교육연구소 소장은 “국가경쟁력 순위와 성평등 순위가 모두 높은 북유럽 국가 등 선진국은 가족구조의 변화, 저출산·고령화 현상 등의 변화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성평등 정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급속한 도시화로 주거비용과 양육비용이 증가하면서 맞벌이 부부가 늘고 아이는 적게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는데, 생산가능 인구가 급감하는 위기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필연적인 정책이 성평등 정책이다.

강 소장은 “시민과 각계 전문가 등 다양한 섹터에서 모여 정책 내용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러한 논의 과정을 통해 양성평등법과 성평등 필요성에 대한 대국민 홍보와 시민들의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성평등 정책의 얼굴’인 양성평등법이 법의 취지에 맞게 집행되려면 국민에게 달리지는 법 내용과 정책을 알려야 하는 담당 공무원부터 법의 역사성, 제정 취지와 목표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차인순 국회여성가족위원회 입법심의관은 “법을 집행하는 정부가 여성에 대한 성차별과 성불평등 시정이라는 양성평등기본법의 기본 취지를 비롯해 법이 만들어지게 된 맥락, 법의 목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흔들리지 않는 입장과 기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깊이 있는 교육과 함께 최소 광역 단위의 라운드테이블을 마련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시민사회, 전문가가 법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여성정책조정회의에서 이름이 바뀐 양성평등위원회의 역할과 관계 부처와 협업해야 하는 여성가족부의 위상, 예산 문제도 풀어가야 할 과제다.

 

‘양성평등기본법’으로 달라지는 9가지

1.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양성평등기본법’에는 ‘실질적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추진체계 내실화, 성주류화 정책 강화, 여성과 남성의 동반 성장을 위한 시책이 담겼다.

2. 양성평등기본법은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의 영향으로 같은 해 제정된 ‘여성발전기본법’을 전부 개정한 것이다. 여성발전기본법이 여성 차별 개선에 중점을 뒀다면, 양성평등기본법은 성차별 해소,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참여와 대우 등을 통한 ‘실질적 양성평등’을 목표로 한다.

3. 법에는 양성평등을 ‘성별에 따른 차별, 편견, 비하 및 폭력 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고 모든 영역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받는 것’으로 정의한다.

4. 법적 성희롱 대상이 확대됐다. 성희롱 정의에서 ‘고용상 불이익’을 ‘불이익’으로 변경하고 조건형 성희롱을 포함시킴으로써 그 범위를 확대했다.

5. 공공기관 관리직 목표제를 공공기관까지 의무화했고, 국가기관과 민간기업이 모성권뿐만 아니라 부성권까지 보장하도록 명문화했다.

6. 국무총리 주재 여성정책조정회의는 양성평등위원회로 개편돼 양성평등 정책에 관한 중요 사항의 심의·조정을 맡게 된다. 민간위원은 10명까지 위촉할 수 있다.

7. 5년마다 양성평등 실태조사가 이뤄지며, 매년 국가·지역 성평등지수도 공표된다.

8. 중앙행정기관에만 있던 여성정책책임관은 양성평등정책책임관으로 변경된다. 시·도 단위에서도 양성평등정책책임관(실장급)과 양성평등정책 전담전문인력(5급 상당)이 지정된다. 이들과 성인지 관련 정책 등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양성평등 교육을 받아야 한다.

9. 대중매체에서의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 편견, 비하 내용을 점검해 여성가족부 장관이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 기관에 개선을 요청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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