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슈너트 가공하고 식당 운영해
자녀와 남편 부양하는 여성들
남자는 양육비도 안 보태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구름 속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김경애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구름 속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김경애

일찍이 보저럽(E. Boserup)은 1970년에 발간한 저서에서 “아프리카 결혼제도는 관개농업 방식으로 남자들이 주로 농사를 짓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나 중동지역의 일부다처제와는 형태가 다른 일부다처제”라고 기술했다. 전통적으로 농업사회인 윤작으로 농사를 짓는데, 남자는 옮겨간 땅에서 나무를 잘라내고 땅을 고르는 일만 하고 여성들이 농사를 지어 남편과 자녀들을 부양한다는 것이다.

아내가 남편을 부양하기 때문에 아내는 자신이 홀로 남편을 부양하기보다는 남편이 부담을 나눌 수 있는 다른 아내를 얻는 것을 선호한다고 했다. 즉, 수확을 하고 난 후 한 해 수입을 계산하고 돈이 남으면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를 한 명 더 얻자고 제안해 아내를 더 얻고, 새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 생산성이 높아져 남자는 더 부유해진다는 것이 내가 알고 있던 아프리카의 결혼과 가족제도에 관한 정보였다.

믈란디지에 도착하자마자 일부다처제의 현장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 아프리카 여성들이 행복할까? 현재 남편과 같이 살고 있는 여성들은 “같은 집, 같은 방에 살지만 그것뿐”이라고 덤덤하게 말한다. 이들은 남편이 늙어 더 이상 수입이 없자 돌아와서 자신의 부양을 받는다고 했다. 남편과 같이 살고 있는 An(가명)은 소액대출을 받아 식당을 경영하는데 수입은 전부 가족을 위해 사용하며 식당에서 만든 음식을 남편에게 가져다 준다. 남편은 그전에는 수력발전소에서 일했는데, An은 남편의 월급을 본 적도 받아본 적도 없다고 한다. 남편은 월급을 혼자 다 썼고 가족을 위해서는 전혀 사용한 적이 없다. 돈을 조금이라도 벌면 술 먹고 다른 여자 만나서 놀았고 퇴직 이후에는 수입이 없어 여자를 만나지 못하고 An의 집에서 얹혀산다.

남편과 같은 집에 살고 있는 Wi(가명)의 남편은 군인이었는데, Wi도 남편 월급을 본 적도 받은 적도 없다. 남편에게는 다르에스살람에 자신보다 어린 부인이 있고 아이도 한 명 있는데, 지금은 수입이 없어 자신이 므완자 빅토리아 호수에서 잡은 생선을 말려  장사를 하고 모텔에 음식과 음료를 납품해 돈을 벌어 남편을 부양한다. 결혼생활은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다고 했다. 결혼해서 좋은 점은 말할 상대가 있다는 점이라고 했지만, 결국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다른 대안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캐슈너트를 가공해 파는 Fa(가명)는 어린 쌍둥이 2쌍과 중학생인 큰 딸을 키우고 있다. 다르에스살람에서 헬스센터 경비원으로 일하는 남편에게는 부인이 3명 더 있다고 한다. 남편은 식비를 일부 부담할 뿐 자녀 교육이나 가옥 개축 등 주거환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자신이 번 돈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고, 벽돌집을 지었는데 아직 문을 달지 못했다. 그녀는 남편이 아이들 아버지라서 살고 있고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Ch(가명)는 남편과 연애 결혼했다. 아이 둘을 낳고 살고 있었는데(막내딸 5세), 남편이 3년 전 갑자기 자신을 떠나 110km나 떨어진 모로고로에서 농부로 일하고 있다. 자신의 집에는 4개월에 한 번씩 방문해서 일주일간 머물고 간다. 남편은 방문할 때 가져오는 쌀 조금이 남편으로부터 받는 전부다. “남편을 기다리느냐”고 묻자 “자신은 남편을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고 아이들과 살아가기가 바쁘다”면서 남편은 자신에게 “불안정한 존재”일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남편이 왜 자신을 떠났는지 거기서 어떻게 사는지, 다른 여자가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Ch는 갑자기 자신은 아직도 남편을 사랑한다면서 울기 시작했다. El(가명)이 통역하다 말고 같이 눈물을 흘리며 “남편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Ch를 위로했다. 아름답고 선한 눈을 가진 Ch의 쉽게 그치지 않는 눈물에 나도 같이 울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Sa(가명)는 남편과 정식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면서 16세, 13세의 두 딸과 막내 6살 난 아들을 두었는데, 남편이 어느 날 떠나버렸다. 시집에서는 둘째 딸만이 자신의 집안 사람들과 닮았다고 데리고 가버리고 나머지 자녀들의 양육비는 물론 생활비를 준 적이 없다.

닭을 300마리 키우는 Co(가명)는 남편과 결혼한 지 2년 만에 헤어지고, 홀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땅을 조금씩 사고 집을 지었다. 아들을 혼자 고등학교까지 키우고 가르쳤는데 남편이 데리고 가버렸다. 아들에 대해 실망하고 외로워서 아이를 가지기 위해 한 남자를 만나 딸(6살)을 낳고 헤어졌다. 그런데 이 남자가 자신의 6살 난 딸의 양육비를 지불한다고 자랑스러워했다. 헤어진 남편이 자신의 자녀의 양육비를 지불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남편과 같이 살면서 가정경제의 부담을 서로 나누고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여성은 없었다. 남편의 부인이 20명쯤 될 것이라고 말한 El(가명)은 의학박사 학위 과정 중인 아들이 마사이족 후손이지만 결혼하면 자신의 아버지와 같이 여러 부인을 얻지는 않을 거라고 말했으나, 나중에는 어떨지 모르겠다고 말꼬리를 흐린다. 탄자니아 여성들이 결코 일부다처제를 기꺼이 받아들이지도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편이 여러 명의 부인을 두고 이집 저집을 떠돌아 다니며 사는 것에 대해 여성들은 결코 달가워하지도, 행복해하지도 않는다. 두 명의 여성이 남편에 대해 “대안이 없다”는 말로써 체념하고 살고 있는 여성들을 대변했다. 그러나 탄자니아 결혼문화도 점차 바뀌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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