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맡길 곳 없이 맞벌이는 발만 동동
부부 번갈아 휴가내거나 아이만 두고 출근도
위생 문제로 돌봄교실·아이돌보미 이용도 꺼려
자녀 돌봄 위한 ‘유급휴가’ 필요성 제기

 

부산에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 가운데 8일 오후 부산 연제구 연산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보건교사가 학생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부산에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 가운데 8일 오후 부산 연제구 연산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보건교사가 학생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산으로 휴업에 들어간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가 늘어나면서 아이 맡길 곳이 마땅치 않은 맞벌이 부모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보육대책은 마련해두지 않은 채 휴원·휴교 조치가 결정된 탓이다. 일부 학교가 돌봄교실을 운영하고, 휴원을 결정한 어린이집이 부모가 원하면 아이들 돌봐주기도 하지만 위생 물품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부모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김모(35)씨는 어린이집 휴원으로 회사에 연차를 냈다. 김씨는 “어린이집이 휴원을 하는 바람에 고향에 계신 친정어머니를 올라오시게 해서 아이들을 맡겨왔다”며 “고령인 어머니께 아이를 계속 맡길 수 없어 제가 이틀간 휴가를 내고 아이들을 돌보고 있고, 이어서 남편이 휴가를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차를 낼 수 있는 맞벌이 부모는 그나마 다행이다. 대다수 직장인들은 회사 눈치와 대체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휴가는 언감생심이다.

워킹맘 김모(33)씨는 “어린이집의 휴원 결정을 통보받았지만, 주위에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어린이집에 사정해서 아이 홀로 등원시켰다”며 “아이가 걱정돼 어린이집에 전화를 해보니 그날 등원한 아이는 우리 아이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이 혼자 어린이집에 있을 생각을 하면 일하는 저도, 메르스를 막지 못하는 나라도 원망스럽다”며 “이럴 때는 일하는 엄마가 죄인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분노했다.

주변에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어린 아이들만 집에 둔 채 출근하는 부모들도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인 딸과 유치원생 아들을 키우는 박모(39)씨는 “어제는 회사에 사정을 말하고 조퇴했는데 오늘은 회사 눈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두 아이만 두고 출근했다”며 “맞벌이 부부를 위한 돌봄 대책을 마련하고 휴교를 해야지, 무작정 학교 문을 닫으면 워킹맘은 어쩌라는 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모(48)씨는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밤 10시가 넘어 휴원을 한다는 문자를 보내왔다”며 “갑자기 온 연락에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할지 막막했다”고 했다. 조씨는 “친정에 아이를 맡기는 것도 죄송해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며 “지금같이 긴급한 상황에 아이를 돌봐 줄 시스템이 전무한 상황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일부 학교에선 휴업 중 이용할 수 있는 돌봄교실을 운영하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부득이한 경우에는 등원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지만, 메르스 불안감에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경우도 상당수다. 여성가족부는 메르스 확산으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초등학교가 휴원·휴교하는 경우 아이돌봄서비스를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바로 아이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실제 경기도의 한 건강가정지원센터에 문의해보니 “내일 당장 아이돌봄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지 확답을 드릴 수는 없다”며 “아이돌봄서비스 홈페이지에서 이용 신청을 하면 그때부터 시간이 맞는 아이돌보미를 찾아봐야 한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어린 자녀를 키우는 맞벌이 부모에게 ‘유급휴가’를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휴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맞벌이 부부와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출근해야 하는 가정들의 보육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라며 “관련 부처들이 대책을 시급히 마련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기업들도 유급휴가 등을 최대한 배려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언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메르스 등 감염병의 확산으로 학교와 어린이집이 휴업할 경우, 직장에 다니는 학부모가 자녀를 돌볼 수 있도록 ‘유급 돌봄휴가’를 신설하는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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