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아이가 교장실로 찾아왔다.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매사에 적극적이고 밝은 표정이어서 모든 교사들이 예뻐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뜻밖의 부탁을 했다. “교장 샘, 저 위탁생으로 보내주시면 안 돼요?” 우리 학교는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타 학교 학생들을 위한 위탁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아, ○○이가 고민이 많은 게로구나. 그래, 무엇 때문에 그러니?” “학교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어요! 수업을 들으면서 이것을 내가 왜 배워야 하나 싶고, 아이들이 욕하고 장난하는 것도 꼴도 보기 싫어요.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고… 그냥 당분간 내가 하고 싶은 활동에만 몰두하고 싶어요.”
생각 같아선 ‘그래, 그렇게 해라! 네 마음이 풀릴 때까지 실컷 놀다가 다시금 학교가 그리워질 때 오거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칫 아이를 학교 밖으로 쫓아내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진급과 졸업을 위해서는 출석일수와 과목별 이수 기준 등 지켜야 할 규정이 빼곡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얘야, 그렇더라도 좀 견디면서 지내봐라.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일단 졸업하고 대학에 가야지!’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미 다른 교사들에게 수없이 들었을 테니까.
지금 학교에는 이런 아이들이 무수히 있다. 우리 학교만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말이다. 그들에게 학교는 이미 아무런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장소일 뿐이다. 수업 시간에 교사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도 없고, 또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별로 관심이 없다. 가끔 하고 싶거나 배우고 싶은 것이 있지만, 학교 다니는 것을 포기해야 하니 그럴 수도 없다. 학교를 포기하고 싶기도 하지만, 솔직히 미래가 걱정되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의 대부분은 게임이나 소비성 오락으로 시간을 보내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일부 아이들은 삶 자체에 대한 허무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 아이들에게 학교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본성적으로 자유로움과 방황을 추구하는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지금의 학교제도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예전에 비해 훨씬 느슨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학교는 촘촘한 그물로 청소년들을 가두어놓는 감옥과 같은 곳이다. 미국의 존 테일러 개토는 『바보 만들기』라는 책에서 학교를 원형감옥에 비유했다. 원형감옥의 구조는 죄수가 자신이 감시당하는 것을 알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나는 지금의 학교가 아이들에게 숨 쉴 틈을 더 열어주었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자유학기제의 시도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기왕이면 좀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 덴마크의 웅돔스콜레처럼 1년 정도 학교를 떠나 하고 싶은 일을 해볼 수 있도록 허용하면 어떨까.
나에게 찾아온 아이에게는 한 달간의 쉼을 갖도록 했다. 알바로 돈을 벌어 긴 여행을 해보고 싶단다. 부디 새로운 원기를 가득 채워 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