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받은 임흥순 감독
“구로공단의 여공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난 5월 9일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은사자상을 받은 임흥순(46)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위로공단’은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2010년 서울 금천구 독산동 금천예술공장의 창작공간에 입주하게 된 임 감독은 옛날 구로공단 자리였던 그곳에서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리고 여동생이 생각났다. 40년 넘게 봉제공장 ‘시다(보조)’ 생활을 해 오신 어머니와 백화점 의류매장과 냉동식품 매장에서 일해온 여동생이었다.
노동의 문제를 제대로 다뤄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작품으로 이어졌다. 임 감독의 실제 삶에 빗대어 탄생한 위로공단의 진정성은 한 예술가의 축적된 시간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사례로 더욱 빛을 발한다.
왜 ‘위로공단’일까. 14일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임 감독은 “구로공단이라는 곳에서 작업했던 그분들에게,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온 많은 여성 노동자에게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일하며 살아가는 한국과 아시아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일이 일상이자 공포이며 행복인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다큐멘터리다. 생산직, 사무직, 관리직, 일용직, 정규직, 비정규직까지 현대인의 삶 그 자체가 된 ‘일’을 중심으로 다뤘다.
국내뿐 아니라 캄보디아 등에서 포착한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그의 작업은 신자유주의 사회의 자본 이동과 노동 변화에 따른 현실적 불안을 예술적 언어로 써 내려간 역사 기록이다. 다큐멘터리 영화지만, 여성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다. 다양한 표현 방식을 통해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영화 중간중간 눈과 얼굴을 가린 여성이 등장한다. 임 감독은 “실밥과 먼지 등으로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는 여공의 인터뷰를 듣고 눈앞의 현실을 차라리 피하고 싶은 여성의 모습을 이미지화했다”고 설명했다.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영상 안에서 사실적인 상황의 나열을 넘어 다양한 행위예술적 재연과 병치되어 여운은 배가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정 공간과 사람들의 모습을 자료 화면으로 과거에 고착시키지 않는다. 자본의 흐름이라는 유동성과 맞물려 굴레처럼 되풀이되는 현재와 역사의 지속성을 이미지로 뒷받침한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위로공단에 대해 “선동의 매력이 넘치는 영화다. 정치적 선동을 넘어선 예술적 선동이 느껴진다. 세상을 뜨겁게 만들 수 있는, 긍정적이고 올바로 만들 수 있는 영화”라고 평가했다.
제작 과정에서 65명을 인터뷰했지만, 영화에는 22명이 출연한다, 그중 남성은 1명, 21명이 여성이다. 유일한 남성 출연자는 1978년 동일방직에서 여성노조 지도부 결성을 방해하기 위해 여공에게 오물을 뿌린 일명 ‘똥물투척사건’을 촬영했던 사진사다. 그는 유신시대의 대표적인 여성노동 잔혹사로 통하는 사건을 떠올리며 “사진을 현상하다가 울었다”고 심정을 고백한다.
“구로공단의 여공들은 다 어디로 갔던가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임 감독은 “뻔한 말이겠지만, 알고 보니 저희 어머니였고, 여동생이었고 가까이 있던 분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저 “니가 하고 싶은 거 해서 받은 거다. 축하한다”고 아들을 격려했다.
“수상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서 지금보다는 시간이 지나야 실감 날 듯하다”는 임 감독은 “위로공단은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많은 분이 보셨으면 좋겠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젊은 학생들로부터 30·40대 젊은 여성들은 많은 공감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엔날레 미술전 본 전시에 초청된 한국 작가는 2009년 이후 5년간 단 한 명도 없었다. 올해는 임흥순, 남화연, 김아영 3명의 작가가 초청받았다. 영화로 초청받은 작가는 임흥순 감독이 유일하다. 정치, 사회, 국가, 자본으로부터 주어진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때론 정치적으로 때론 감성적으로 다양한 매체에 담아온 임 감독은 차기작인 ‘환생’을 준비 중이다. 환생은 한국전과 베트남전 등 전쟁을 몸소 겪은 한 할머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여성은 그에게 세상을 보는 눈이자 위로다.
“저희 어머니는 40년 가까이 시다로 일했다. 머릿속으로 계획했던 게 아닌, 몸으로 느꼈던 미안함과 고마움 이런 것들이 큰 영감을 준다. 위로공단을 보고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나 신발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됐다’는 분들이 있더라. ‘과거의 삶이 이랬구나’ 되돌아보게 됐다는 말도 들었다. 우리가 모든 과정을 꼭 알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질문을 만들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