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이라지만…싱글맘 양육 지원은 태부족
자립 위해 취업문 두드려도 차가운 시선뿐
교육·노동 보장해 아이와 함께 살길 터줘야
“아이가 태어나고 가장이 되고 난 후 일을 찾기 위해 면접을 보러 다녔어요. 제 이력을 보고 호의를 보이던 면접관들이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같이 일하기 힘들 것 같다고 하더군요.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에 응원을 한다고 했던 이들조차도 미혼모라고 하면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바라봐요.”
홀로 아이를 키우는 A씨는 결국 미혼모라는 사실을 숨기고 취업을 했지만, 아이가 아프면 속수무책이었다. 입원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불가피하게 휴가를 냈다가, 근무태만으로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직접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들이 늘고 있지만 이들이 홀로 생계와 육아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양육 미혼모는 3만5809가구로 추정할 뿐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다. 이들이 겪는 가장 큰 걸림돌은 사회적 편견이다. 지난 2009년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혼모는 동성애자 다음으로 가장 많은 차별을 경험한 집단으로 조사됐다. 미혼모가 판단력과 책임감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답한 사람도 60%나 됐다. 이러한 사회의 편견 속에 미혼모들은 여전히 ‘눈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취업 시장의 냉대가 대표적이다. 앞서 소개한 A씨처럼 미혼모라는 이유로 불합리하게 직장에서 쫓겨나는 차별 사례는 수두룩하다. 이러한 차별에 임신이나 미혼모 사실을 숨기고 일하는 경우도 많다.
다섯 살 난 딸과 사는 B(35)씨는 “임신을 하고선 배를 복대로 감싸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사장이 알아챈 다음 날부터 나오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30대 미혼모 C씨도 “회사에 미혼모라고 밝혔더니 인사담당자가 찾아와 채용 과정에서 왜 밝히지 않았냐고 타박해 서글펐다”고 토로했다. 주위 동료들 시선 때문에 본인이 직접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집안 살림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자 아이를 돌보는 엄마인 미혼모에게 생계 위협은 가장 큰 어려움이다. 미혼모들은 미혼모 보호시설에서 퇴소하고, 자립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차가운 현실 앞에 주춤거릴 수밖에 없다.
10대에 결혼하지 않고 출산한 학생 미혼모의 경우, 주위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자퇴를 강요당하기도 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학생 미혼모 학습권 보장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부산·광주·경북·전북 등 5개 지역 중·고등학교를 전수조사한 결과, 786개 고등학교 중 절반 이상(58.8%)의 학교가 이성교제 관련 처벌 규정을 두고 있었다. 처벌 규정이 있는 고등학교 중 48.1%가 가장 처벌수위가 높은 퇴학을 시킬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학생이 임신이나 출산을 하면 학교를 그만둬야 하는 셈이다.
반면, 대안위탁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 미혼모는 2013년 한 해 68명에 불과했다. 학생 미혼모를 위한 위탁교육 지원이 아예 없는 교육청도 5곳에 달했다. 대안위탁교육기관이란, 임신이나 출산 등으로 학교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정부에서 지정·지원하고 있는 교육시설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학생 미혼모(청소년 미혼모) 30명을 심층 면접한 결과에서 이 같은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학생이 임신하면, 학교에도 피해가 가고, 저에게도 피해가 가잖아요. 담임선생님이 되게 애를 먹으면서 입막음을 하고 있죠.”(18세 D양)
“학교에서 임신했다고 벌점 40점을 준 거예요. 그 전에 있던 벌점까지 더하면 77점이었어요. 77점이면 퇴학이거든요. 학교에서 퇴학은 안 시킬 테니까 대안학교로 가라고 한 거죠.”(17세 E양)
연구를 총괄한 정해숙 여정연 선임연구위원은 “10대 미혼모가 학업을 중단할 경우, 실업과 빈곤으로 이어져 미혼모와 그 자녀들까지 빈곤을 대물림하면서 소외계층에 머무를 수 있다”며 초중등교육법에 학생 미혼모 학습권 보장 관련 조항과 학교생활기록부 작성·관리 지침에 ‘임신 및 출산 관련 결석 또는 휴가’ 관련 조항을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박영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미혼모 노동자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마음 놓고 쓰고, 회사나 주위 동료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도록 법에서 정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면서 “미혼모를 비롯해 모든 여성이 마음 놓고 임신·출산·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임신한 미혼모는 경제적 위기와 가족관계 단절의 위기를 겪는 와중에 낙태와 양육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며 “상담, 교육, 정보 제공, 숙식 등의 충분한 지원을 통해 미혼모가 자신과 아이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싱글맘 A씨는 편견과 낙인 대신 자신도 한 아이를 키우는 보통 엄마로 봐줄 것을 당부했다.
“나는 내 아이를 사랑합니다. 미혼모의 자녀라 엄마도 아이도 불행할 것이라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고, 힘들고 부족하지만 남들처럼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