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치 알바 월급 하루 만에 날려” 고교생 사이에 독버섯처럼 번진 도박
알코올중독 심각… 모텔 방서 밤새 폭탄주도 “흡연, 음주처럼 도박 예방교육 필요 ”
“돈을 100만원 넘게 땄다.”
고2 차승진(가명)군은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밥을 사주면서 이렇게 자랑하는 걸 보곤 도박에 관심을 갖게 됐다. 승진이뿐 아니라 반 아이들이 다들 한 번씩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돈을 날렸다.
승진이는 왜 도박에 빠졌나
승진이는 피자집 배달 알바로 번 100만원을 날린 후에도 도박을 끊지 못했다. 공부는 뒷전에 두고 밤마다 알바를 뛰었다. 친구들에게 20만원, 30만원씩 빌리기도 했다. 승진이는 “엄마가 몰래 도박 빚을 갚아주느라 마음고생이 심하다”면서도 “PC 앞에만 앉으면 도박 사이트에 접속하게 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10대들의 중독 현상이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 도박이나 알코올중독에 빠지는 나이도 갈수록 어려지고 있다. 게임 중독에 빠지거나 음주, 흡연을 하는 초등학생들도 있다. 중학교 입학 후 약물에 중독되는 사례도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3월 17일 인터넷도박, 알코올, 약물, 게임 등 학생 중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 교육청 중 처음으로 서울시교육청 별관에 서울학생중독상담센터를 열었다. 학교와 센터를 직접 연결하는 원스톱 핫라인을 개설해 접수-선별-평가-상담·연계의 4단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 중독 우려 학생들의 일탈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부모나 조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도박에 빠져드는 학생들이 크게 늘고 있다. 김경아 서울학생중독상담센터 실장은 “학생들은 주로 불법 스포츠토토를 많이 한다. 결과가 빨리 나오고 베팅 금액이 커서 아이들이 쉽게 빠져든다”며 “이러다 부모와 갈등이 생기면 가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앞서 승진이 사례처럼 한 학생이 도박으로 돈을 따면 학교에 이야기가 쫙 퍼지면서 많은 아이들이 “돈 벌고 싶다”는 욕심에 불법 스포츠토토에 빠져든다. 고교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번 한 달치 월급을 하루 만에 도박 사이트에서 날리기도 한다.
알코올중독도 갈수록 심각한 양상이다. 특히 남학생들이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고2 김용현(가명)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군은 알코올‧약물 중독으로 병원에 세 차례 입원했다.
용현이는 모텔 방을 잡아 소주와 맥주를 박스째 놓고 친구들과 밤새 폭탄주를 마시는 일탈 행동을 했다. 모텔 방에는 여학생들도 함께 있었다. 중독에 빠져 감정 조절을 못 했다. 부모에게 물건을 던졌고 때로는 남의 돈을 훔쳐 경찰서를 들락거렸다. 중산층 평범한 가정의 외아들 용현이의 삶은 이렇게 망가져 갔다.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면 감정 조절이 안 돼 주먹부터 나갔다. 결국 학교폭력 가해자가 됐다. 부모는 “이제 진짜 포기하고 싶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용현이 곁에 있는 친구들도 늘 바뀌었다.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했다. 호탕하게 돈을 잘 쓰니 친구들이 용현이를 이용하기도 했다.
용현이처럼 중독 증세는 중복으로 겪는 학생들이 많다. 흡연이나 음주에 빠져 지내다 본드도 흡입한다는 얘기다. 김 실장은 “중독에 빠지면 학교에 등교해 공부하는 것조차 부담을 느낀다”며 “위기 학생 중 열에 아홉은 중독을 겪고 있지만 중독을 겪는 모든 아이들이 위기 가정은 아니다. 평범한 학생들이 중독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상담 사례를 보면 아버지가 고위직 공무원인 부유한 가정의 아이가 사춘기 때 잘못된 유혹에 빠진 경우도 있다. 도박으로 돈을 잃으면 보통 “내가 해선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에 금세 빠져나오지만 부모나 교사, 친구 등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거나 자존감이 낮으면 중독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중독 폐해 심각… 폭력 사건 비화도
중독이 가져오는 폐해는 엄청나다. 학교에 등교해 공부하는 것조차 부담을 느낀다. 여학생들과 모텔 방에서 술을 마시다 성관계를 하기도 한다. 친구들에게 도박 비용을 빌렸다가 갚지 못해 폭력 사건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있다. 중독에 빠진 학생들은 폭력성과 공격성을 갖는다. 자신이 고립된다는 느낌에 피해의식도 커지기 마련이다.
심지어 집에서 돈을 훔치거나 “준비물을 사야 한다” “부교재를 사야 한다”며 부모를 속여 돈을 타 간다. 학교 서류를 조작해 학기 초에 부모로부터 큰돈을 타기도 한다.
내 아이가 이렇게 중독 증세를 보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컨대 왜 어른들은 흡연이나 음주를 하면서 나만 못 하게 하느냐며 반발할 수 있다. 이때는 이렇게 답해주면 된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 그걸 하면 굉장히 건강에 안 좋다. 성인이 된 후 나중에 선택을 해라. 어른인 내가 몸에 나쁜 행동을 하게 만들 수 없다.”
중독 증세를 겪는 자녀가 있으면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부모가 느낄 정도면 중독 증세가 심각한 편이며 지역Wee센터나 학교 등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사설 중독 전문기관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아이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도 중요하다. “내 아이는 게임을 끊을 수 있다, 중독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아이가 당장 게임 중독에서 못 벗어나도 조급해지지 않는다. “너무 피곤하지 않게 조금만 하고 자라”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니?” 아이를 대할 때도 이런 말이 나온다. 비난은 금물이다. “얼마나 힘들면 그랬니? 삶이 불편했구나. 어른들이 잘못 돌봐줬다”처럼 아이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학생들이 중독에 빠지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공부 스트레스다. 학업 성적만으로 아이를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
김 실장은 “우리나라는 도박의 천국”이라며 “중·고교에서 게임이나 흡연, 음주 예방교육을 하듯 도박 예방교육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