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로맨스, 대중문화 흥행 코드로

황혼의 로맨스가 드라마와 영화의 핫 트렌드로 떠올랐다.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국제시장’의 선전이 이런 흐름에 불을 붙였다. 노년의 애틋한 부부애를 그린 다큐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관객 480만 명, 아버지 세대의 헌신을 그린 ‘국제시장’은 관객 1400만 명을 동원하면서 중·장년층 이상 세대의 문화 파워가 확인된 후 올 들어 부쩍 노년의 연애를 그린 대중문화 콘텐츠가 늘어났다.

9일 개봉하는 강제규 감독의 ‘장수상회’는 70살 연애 초보 성칠과 그의 마음을 뒤흔든 꽃집 여인 금님의 달달한 연애를 다룬 영화다. 인생의 후반전에 불현듯 찾아온 가슴 떨리는 사랑을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그렸다. 강 감독은 “요즘은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쿨한 연애가 유행인 시대다. 진심과 배려로 서로에게 다가서는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를 통해 진짜 사랑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요즘은 나이가 사랑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사랑의 나이 공식이 이미 파괴됐음은 최근 한국갤럽 조사에서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란 노래가 한국인 애창곡 1위로 선정된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야이야이야아,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는 노랫말이 대중의 공감을 얻었음을 보여준다. 이 노래는 인기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출연 중인 배우 김광규와 가수 강남의 이모가 펼친 러브 라인에 삽입돼 웃음을 안겨주기도 했다.

지상파 드라마는 노년의 사랑에 더욱 적극적이다. 지난 8일 종영한 MBC 주말극 ‘전설의 마녀’의 마지막 회에선 각기 배우자와 사별하고 오랫동안 혼자 살아온 할아버지 박이문(박인환)과 할머니 심복녀(고두심)의 결혼식 장면이 전파를 탔다. KBS2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도 한 남자(이순재)를 둘러싼 조강지처(김혜자)와 첫사랑(장미희)의 삼각관계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죽은 줄 알았던 이순재가 돌아오면서 할머니들의 사랑과 전쟁은 다시 불붙게 된다.

대중문화 평론가들은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60~70대가 ‘신 중년’으로 강력한 문화 파워를 갖게 된 데다 노년의 사랑을 어색하게 보지 않는 사회문화의 영향으로 이 같은 열풍이 불었다고 설명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변화한 것도 원인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드라마 본방송 시청이나 영화관을 찾는 것 못지않게 인터넷(IP) TV를 통해 웹드라마를 즐겨본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젊은 층이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다양해진 것과 달리 노년층은 비교적 충성도가 높은 타깃층”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예전에는 연례행사, 혹은 사회적 신드롬이 불 때만 극장을 찾았던 노년층이 요즘은 영화관을 즐겨 찾는다.

특별히 연애가 대중문화의 흥행 코드가 된 것은 자신이 ‘젊다’고 여기는 60대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요즘은 ‘60대 몸짱’도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 ‘꽃보다 할배’처럼 노년의 배낭여행이 현실성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노년을 다루는 콘텐츠도 무겁지 않고 가벼워졌다.

‘장수상회’에서도 성칠과 금님의 연애는 젊은 세대의 사랑과 다를 바 없다. 금님의 데이트 신청에 성칠은 10대처럼 당황하고, 금님은 성칠을 생각하느라 밤잠을 설친다. 이런 두 사람을 보며 관객들은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에 빠져든다. 더욱이 소녀 같은 감성의 윤여정이나 청년 같은 이미지의 박근형의 모습에선 그다지 나이가 연상되지 않는다.

정씨는 “다만 노년을 다루는 방식이 비슷한 패턴의 반복이라 아쉽다”며 “‘국제시장’처럼 과거에 대한 향수나 복고, ‘장수상회’처럼 청춘의 이야기일 필요는 없다. 자녀와의 갈등, 고독사 등 노년의 콘텐츠가 더욱 다변화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