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수건 두른 회교국 대표 참석, 봄 축제 같았던 CSW
갈 길 까마득… 모성 결합된 지도력 발휘되도록 한국 사회 바뀌어야
세계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은 1948년 인권선언을 필두로 활발하게 전개돼 왔다. 특히 여성에 대한 차별 철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여성 지도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끈질기게 투쟁해온 결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유엔이 유엔여성(UN Women)을 설립하고 해마다 여성지위위원회(CSW)를 열어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고 실상을 점검하며 변화를 촉진하려는 노력은 더디기는 하지만 조금씩 발전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유엔이 관여해서 활동하는 여성회의의 흐름을 살펴보면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을 더듬어본다.
해마다 2월 말부터 3월 초에 이르는 2주간은 유엔여성의 정부대표회의와 민간단체(NGO)들이 개최하는 각종 회의와 세미나 등으로 유엔본부가 있는 뉴욕의 맨해튼 지역은 갑자기 불어난 외국 여성 대표들의 활발한 몸짓으로 축제가 벌어진다.
제59회 유엔 여성회의 주제는 ‘베이징+20’으로 1995년 개최됐던 제4차 세계베이징여성대회 이후 20년간 어떤 발전이 있었는지 점검하고 앞으로 10년, 20년을 위해 무엇을 할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40년 전 최초의 세계여성대회가 멕시코에서 개최된 후 우리 여성의 삶과 처지가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따져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내가 실감한 변화는 이번 회의에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대표단을 파견했고 머리에 두건을 두른 회교국 여성 대표들이 수적으로 다양하게 참가했다는 사실이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와 회교국 대표단의 참가는 소극적이었다. 올해는 각 지역에서 여성 파워와 영향력이 정부를 움직여서 여성의 활발한 국제회의 참가가 이루어졌다면 이 또한 여성의 발전이다.
평등, 발전, 평화를 기치로 내걸고 4차례에 걸쳐 남미의 멕시코, 유럽의 코펜하겐, 아프리카의 나이로비와 아시아의 베이징에서 세계여성대회를 개최하고 베이징대회에서 채택한 12개의 행동강령을 20년 동안 유엔 회원국 192개국의 정부와 NGO, 그리고 각계의 여성 지도자들이 실천해온 활동을 총점검하는 올해의 회의는 여성 지위 향상과 여성의 사회참여를 실제로 체감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행사였다.
1975년 유엔의 사무차장직에 있었던 헬비 시필라 여사는 멕시코에서 최초로 세계여성대회 개최를 주선하고 그해를 여성의 해로 선포했다. 그 회의에 참가한 여성들은 주제인 평등, 발전과 평화를 논의하면서 너무나 과제가 크기 때문에 참가자 전체의 요청으로 여성과 관련한 활동을 위해 ‘여성 10년’을 선포하기로 결의했다. 1980년 코펜하겐에서 여성 10년의 발전 목표의 실천을 점검하는 제2차 여성대회를 개최하고 부진한 여성 발전을 통감하면서 1985년에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에서 제3차 여성대회를 개최하고 그 10년 후인 1995년에 중국 베이징에서 제4차 여성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의했다.
1995년 베이징여성대회에 우리나라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가 대표로 참석하고 전국에서 지리적으로도 가까웠기 때문에 300명이 넘는 NGO 여성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해 여성운동 국제화의 계기를 마련했다. 강원도에서 참가했다는 한 여성 대표는 나에게 “회장님, 저는 영어를 못 합니다. 그래도 여기서 무슨 회의를 왜 하는지 다 알아요!”라고 말한 기억이 있다. 베이징 대회 때에는 북한 대표단도 활발하게 참여했다.
베이징여성대회는 12개 분야의 행동공약을 만들어내고 12개 분야를 54개 항 535조의 행동지침으로 하는 전략목표를 선정하고 발표했다. 이번의 제59차 CSW 회의가 그 실천 현장을 보고했고 정부 간 회의와 병행해서 NGO는 2주간에 거쳐 날마다 4, 5개씩 다른 회의장에서 평균 25개의 세미나와 강연회, 토론회를 개최해서 전체 463회의 행사를 기획하고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의 회원단체들이 국제단체들과 공동으로 여성의 힘을 결속해 분단 상황의 종식과 통일에의 염원, 여성의 사회참여와 정치참여 활성화를 집중 논의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군인들의 한국 여성에 대한 ‘위안부’ 성노예 정책과 무책임한 후속 조치 등의 실상을 알렸다.
우리나라는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이 정부를 대표해서 참석했다. 김 장관은 16대 국회에서의 정당법을 개정해 여성의 정치참여를 크게 증가시켰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전국구 비례대표에 여성이 절반 지명돼 17대 국회에 여성 의원이 다수 진출한 것과 엄마는 물론 아빠도 출산휴가를 받아서 자녀 양육에 부성의 참여가 실현되고 있다는 발표를 해서 박수를 받았다.
많은 나라가 다투어 가며 베이징행동강령의 실천 결과를 보고하고 있지만 벌써 20년이 지났는데 여성들이 분발해서 평등한 권리와 여성이 참여하는 사회발전 그리고 전 세계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여성적이고 모성이 결합된 지도력이 충분히 발휘되도록 고착화된 사회구조부터 바꿔나가야 한다. 이제부터 10년 후의 좀 더 발전된 여성 참여와 사회 안정을 간절히 바라면서 여성 스스로가 더 분발해야 한다. 특히 남성들이 이 길에 함께 갈 것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