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3일까지 대학로 Sh아트홀서
역사의 비극에 내던져진 가족의 초상
“관객 힐링시킬 감성 뮤지컬”

 

뮤지컬 ‘덕혜옹주’ 연출가 성천모(왼쪽)씨와 주연배우로 더블 캐스팅된 문혜영(가운데), 초아씨가 지난 17일 연습을 마친 후 자리를 함께 했다.
뮤지컬 ‘덕혜옹주’ 연출가 성천모(왼쪽)씨와 주연배우로 더블 캐스팅된 문혜영(가운데), 초아씨가 지난 17일 연습을 마친 후 자리를 함께 했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비극적 삶을 그린 광복 70주년 기념 뮤지컬 ‘덕혜옹주’가 4일 3일 서울 대학로 Sh아트홀에서 개막한다.

뮤지컬 ‘아이다’의 헤로인 문혜영, ‘빠빠빠’를 히트시킨 크레용팝 멤버 초아(본명 허민진)가 주연을 맡은 화제작이다. 2013년 첫 공연돼 이번이 세 시즌째다. 13일 오후 늦게 찾은 서울 신림동의 ‘덕혜옹주’ 연습실은 배우들이 내뿜는 열정으로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덕혜옹주와 딸 정혜의 1인2역을 맡은 여배우와 상대역(덕혜의 일본인 남편 소 다케유키)의 케미스트리도 매력적이었다.

문혜영은 정혜 역에선 호소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다 덕혜옹주 역에선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18년 차 배우의 내공을 보여줬다. 그녀는 1998년 데뷔작 뮤지컬 ‘광개토대왕’을 비롯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맘마미아’ ‘명성황후’ ‘지하철1호선’ ‘하드 록 카페’ 등에서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이전의 소속 극단을 묻자 “밑바닥 출신”이라며 경쾌하게 웃었다. 그런 그녀였으니 브로드웨이 초대형 뮤지컬 ‘아이다’에서 옥주현과 함께 주역으로 발탁됐을 때 큰 화제가 될 만했다. 그는 “주현이가 첫 뮤지컬을 저와 함께 했다. 이번엔 민진(초아)이가 데뷔작을 같이 하고 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민진이는 걸그룹 멤버라는 걸 못 느끼겠더라. 착한 막내 동생 같다”며 “심지가 굳고 열정적이라 공연을 기대하셔도 좋을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옆에서 연습에 한창이던 초아는 “훌륭한 선배님들과 함께하니 하루하루 연습이 설레고 즐겁다”고 했다. “덕혜옹주는 굉장히 비극적인 삶을 살았잖아요. 강제 결혼과 정신병원 입원, 이혼, 딸의 실종이 그렇죠. 하지만 그녀의 삶 속에는 분명 기쁨, 환희, 설렘 등 희극적인 부분도 있었을 거예요. 덕혜옹주를 안타깝게만 보기보다 그녀의 자존심, 딸, 사랑 등을 지켜내려는 모습을 더 보려고 했어요. 첫 뮤지컬 도전이라 어려운 점도 많아요. 작품이 진지하고 무거워서 집중력이 필요하죠. 나이 든 덕혜를 표현하는 게 숙제여서 요즘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초아는 현재 서울예술대학 연기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 연기, 춤 모두 좋아했는데 고등학교 때 뮤지컬을 접하면서 그 매력에 푹 빠졌다. 초아는 “앞으로도 연기, 노래, 춤 하나라도 포기하지 않고 모두 도전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덕혜옹주’는 엄마인 덕혜와 딸 정혜, 그리고 아버지의 이야기다. 아버지 소 다케유키는 중요한 화자다. 실종된 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왜 딸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지 유추해간다. 주연배우이자 직접 희곡을 쓴 문씨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받는 상처와 위로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종 황제의 외동딸인 덕혜옹주는 일제에 의해 모든 것을 잃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일본에 연행돼 강제결혼했고, 결국 정신분열증에 걸려 도립정신병원에 15년간 입원했다. 일본인 남편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혼을 당했다. 그의 딸 정혜 역시 비극적인 운명을 맞았다. 스물세 살에 일본 남알프스 산악지대에서 실종됐으나 현해탄에서 투신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성천모 연출가는 “1년 전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화제가 됐는데 이번 공연에서 관객들이 가족이 같이 살고 있지만 잘 지내고 있는지, 가족 간에 영혼의 소통은 이루어지고 있는지, 아니면 몸만 살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역사의 비극에 내던져진 가족의 초상을 통해 지금 관객들이 가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얘기다.

가족이라면 문씨 역시 할 말이 태산이다. 그녀는 “‘덕혜옹주’ 대본을 울면서 썼다”고 했다. 덕혜옹주의 이야기가 곧 그녀의 이야기, 1남4녀를 키운 엄마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TV에서 덕혜옹주 10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를 본 후 그녀의 삶을 무대에 올리고 싶어졌어요. 덕혜옹주 사진에서 ‘나는 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느껴졌어요. 누군가에게 희곡을 써달라고 했더니 시놉시스라도 달라고 하더군요. 자료를 조사하다 그냥 제가 쓰게 됐어요.” 그때 쓴 대본이 문화체육관광부 공연예술 창작산실 공모에 당선됐다. 직접 극단을 운영하는 게 꿈이었던 문씨는 이후 그애(愛)생각이란 극단을 차려 공연을 올렸다.

‘덕혜옹주’는 비운의 공주가 아니라 한 인간, 한 여자, 한 엄마의 이야기다. 공연은 또 덕혜의 이야기이자 정혜의 이야기다. 정혜가 자기를 둘러싼 모든 이름을 벗어던지고 새 삶을 향해 떠난다. 실종이 아니라 소망을 품은 정혜의 모습을 그려냈다.

모든 딸들은 엄마에게 상처를 준다. 그리고 모든 딸들은 엄마에게 상처를 받는다. 문씨는 모녀의 상처와 화해를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놨다. “어느날 엄마가 멀리서 막 달려오더니 나를 꽉 안고 볼을 비비더군요. 그 순간 엄마가 나를 안는 게 아니라 내 아가가 나를 안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엄마가 평소에 왜 무뚝뚝했는지, 왜 결벽증을 가졌는지 깨달았어요. 덕혜옹주가 살아남기 위해 미칠 수밖에 없었듯 엄마는 자신을 지키고 고된 삶을 버텨내기 위한 방법으로 그랬다는 걸 알았죠.”

문씨는 “우리 모두 해피하우스를 원하지만 교과서에 나오는 그런 가정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덕혜옹주’는 가족에게 상처 받은 관객들에게 힐링이 되는 감성 뮤지컬”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6월 28일까지. 평일은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3시, 7시, 일요일 오후 5시. 14일부턴 수요일 오후 4시 공연이 추가된다. 월요일 쉼. 3월 26일 오후 6시 뮤지컬 ‘덕혜옹주’와 함께하는 가족 사랑 나눔의 밤 행사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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