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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여성을 위한 점성학(?)에 조예가 깊은 한 선배와 프로그램을

함께 했다. 너무 신비롭고 재밌는 이야기들-별자리에 관한, 우리의 기

질들에 관한, 그리고 달과 여성의 몸에 관한-이 펼쳐졌다. 몸이 우주

로 향해 퍼져나가는 듯한, 새로운 상상력이 펼쳐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선배의 입에서 나온 말,

"자위보다는 오토 에로티시즘이 더 에로틱하지 않니?"

오! 맞어, 맞어. 자위는 너무 슬프고, 외롭고, 기능적인 움직임을 연상

하게 해. 오토 에로티시즘... 갑자기 나 혼자만의, 매우 열정적이며, 때

로 온몸의 세포를 다 깨우는 듯한 순간이 굉장히 멋지고, 아름답고, 신

비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 뒤로... 나는 혼자 자위하는 게 아니라 오토 에로티시즘에 흠뻑 젖

을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이름 붙이기는 매우 힘있는 전략이다

오토 에로티시즘 말고도 새로운 이름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고, 사

용되고 있다. 미처 결혼하지 못한 여성이라는 뜻의 '미혼여성' 대신 '비

혼여성'(가부장적인 결혼제도를 거부하는 삶을 선택했다는 의미)를 사

용하는가 하면, 편부모라는 뭔가 결여되고 부족한 느낌의 이름을 버리

고 '한부모'(여기에서 '한'은 '하나', 혹은 '크다'의 뜻)라는 이름이 만들

어졌다.

미혼모는 '미처 결혼하지 못하고 어머니가 된 여자'란 뜻이다. 이 이

름엔 '결혼한 여성이 아이를 낳는 것만이 정상이다'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여기에 비한다면 '독신모'는 아주 당당한 이름이다.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여성이 원한다면 독신이건 기혼이건 상관없이 '자신의 선택

에 의해' 어머니 되기를 결정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80년대 우리사회에는 '성폭력'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저 '강간'혹은 '화간'이라는 개념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몸과

성에 대한 폭력과 인권침해를 '성폭력'이라고 명명하기 시작하자 '아!

그것은 폭력이었구나. 권리에 대한 침해였구나'라는 인식이 생기게 된

것이다.

바꾸고 싶고 버리고 싶은 이름들은 아직도 많다. 예를 들어 '산부인

과' 대신 '여성클리닉'으로, '이혼'에서 '해혼'으로, '시댁'에서 '시집'으로,

'폐경'에서 '완경'으로, 이 세상에 10대 소년만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청소녀'라는 이름도 살려내야 하고, '집사람'이라는 이름은 집밖으로

내던지고 싶다. 아줌마들이 '집'에만 있나? 시장에도 가고, 은행도 가

고, 집에 있다가도 언제 세상 밖으로 나갈 지 모르는데.

'시집간다' 대신 '결혼한다'로, '장인, 장모'대신 어머니, 아버지로, 시부

모만 존칭하는 '어머님, 아버님'에서 '어머니, 아버지'로. '아이를 키운

다'에서 '아이와 함께 산다'로. '장애인, 정상인'에서 '장애인, 비장애인'

으로, '결손가정'에서 '한부모 가족, 복합가족'으로. '여류작가'에서 '여성

작가'로,

작년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의 장애인 출전자가 이렇게 말문을 열

던 모습이 기억난다. "저는 장애여성입니다. 여러분 같은 '비장애인'들

의 입장에서는...." 아! 그렇구나. 장애인인 자기 자신을 세상의 주인공

으로 보는 당당함이 있구나. 그 여성은 '정상인' 대신 '비장애인'이라고

나머지 '잠재적 장애인'을 호명했다.

정치란 이런 것이다. 여성을 세상의 주인공으로 보지 않는 시선, 여성

을 가두는 이름들, 어린아이와 노인, 그리고 장애인과 같은 '공적 권력

이 별로 없는 집단'을 명명하는 많은 이름들에 온전한 이름을 붙이는

것. 그리고 잃었던 이름을 되찾는 것. 이름 없는 것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

이숙경/chuuuk@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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