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진출 ‘좁은 문’… 여성 대통령 시대 체감 온도 ‘뚝’
여성 진출 ‘좁은 문’… 여성 대통령 시대 체감 온도 ‘뚝’
  • 박길자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8.02.28 11:17
  • 수정 2018-02-28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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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장관 ‘제로’, 고위직 공무원 기근 심각… 여성 임원 ‘가물에 콩 나듯’
“여성 대표성 가진 의원들과 정치 계약… 미래 여성 정치세력으로 키워내야”

 

여성할당제 도입 후 여성 의원 비율이 10%를 넘어섰으나 정치문화를 바꾸는 임계점에 도달하려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뉴시스‧여성신문
여성할당제 도입 후 여성 의원 비율이 10%를 넘어섰으나 정치문화를 바꾸는 임계점에 도달하려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뉴시스‧여성신문

베이징행동강령이 나온 지 20년, 우리 사회에서 ‘권력과 의사결정 과정’의 성평등은 어느 수준까지 왔을까.

여성 대통령이 나오고 여성 총리가 배출됐으니 외형상 변화는 분명 두드러졌다. 가부장 문화가 강한 한국에서 여성이 최고 권력의 심장부에 들어간 것은 큰 변화다. 여성할당제가 가져온 변화의 물결도 거셌다.

하지만 여성계의 평가는 냉정했다.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는 진보했지만 권력과 의사결정 구조는 성평등이 가장 미진한 분야라는 지적이다. 김정숙 전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은 “19대 총선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5.7%에 불과하다”며 “세계는커녕 아시아권 국가와 비교해도 정치가 낙후돼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라고 일침을 가했다. 김 전 회장은 “여성들이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에 들어가야 투명 경영과 윤리 경영이 가능하다”며 “여성 임원의 증가는 국가 경제와 기업 발전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여성 의원 15.7%… 정치 후진성 여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에서 나온 ‘권력과 의사결정 구조’ 전략 목표는 이렇다. ‘권력 구조와 의사결정에서 여성의 동등한 접근과 완전한 참여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 ‘의사 결정에의 참여와 리더십에 대한 여성의 능력을 증진시킨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발표한 성격차지수를 보면 한국은 142개국 중 117위다. 남녀 동수는커녕 여성 국회의원도, 여성 고위 공무원도 문화를 바꾸는 임계점(30%)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다. 기업 내 여성 관리직도 마찬가지다. 여성 사장은 1.9%, 1명 이상 여성 이사를 보유한 한국 기업은 15.1%뿐이다(미국 GMI레이팅의 2013년 조사, 45개국 대상). 오유석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전 대표(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부소장)는 “권력과 의사결정 과정의 성평등은 최하위권”이라고 잘라 말했다.

여성할당제는 정계의 지형을 바꿨다. 할당제가 처음 나온 것은 15년 전인 2000년 총선부터다. 국회와 광역의회 비례직에 여성을 30% 할당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그해 16대 총선에선 비례대표로 11명, 지역구에서 5명의 여성이 당선됐다. 4년 뒤 17대 총선에선 제헌국회 이후 처음으로 여성 의원이 10%를 넘어섰다. 비례직 29명, 지역구 10명을 합쳐 39명(13%)의 여성 당선자가 나왔다. 비례직 50% 여성 할당과 남녀교호순번제 권고 조항이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이다. 하지만 국회 의석에서 지역구가 82%에 달하는데 여성은 주로 비례로 국회에 입성하는 것은 큰 문제다.

할당제는 여성친화 정부인 김대중 정부에서 제도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18대, 19대 총선에선 여성 의원 비율이 정체 상태다. 오 부소장은 “최고 리더의 젠더감수성은 여성 정치참여의 중요한 열쇠”라고 꼬집었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를 계승했으나 겨우 현상 유지를 했을 뿐이다. 이명박 정부에선 후퇴했고, 박근혜 정부는 더 후퇴했다. 박 대통령은 ‘준비된 여성 대통령’ 슬로건으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에 체감 온도는 더 낮았다.”

박근혜 정부 들어 여성 인선은 역대 정부 중 가장 적다. 여성가족부 장관을 보통 여성이 맡아온 것을 감안하면 여성 장관은 실질적으로 제로다. 청와대 비서실도 역시 닫혀 있다. 조윤선 정무수석비서관(차관급), 민무숙 여성정책비서관(1급) 등 단 2명뿐이다.

‘풀뿌리 생활자치’인 지방의회는 어떨까. 2002년 여성 후보자와 당선자 비율은 3%대였다.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선 여성 후보자 20.5%, 여성 당선자 21.6%를 기록했다. 역시 할당제의 결실이다. 지방의회에선 국회의원 선거처럼 비례대표 50% 의무 추천과 남녀교호순번제를 채택하고 있다. 다만 지역구 지방의회 역시 국회처럼 공천 장벽이 엄청 높다.

여성 고위직 기근 현상 심각

여성 공무원도 지난 20년간 크게 늘었다. 2003년 34%를 차지했고, 2007년부턴 4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부처의 관리직(5급 이상) 여성 공무원은 11.3%에 불과하다(2012년 조사).

지방자치단체의 여성 고위직 기근 현상은 더 심각하다. 2012년 말 현재 17개 광역자치단체의 4급 이상 여성 공무원(이하 일반직)은 88명으로 남성(1643명)의 5.36%에 불과하다. 정부가 2012∼2016년 지방자치단체 5급 이상 여성 공무원을 15.1% 이상 늘리는 제3차 관리직 여성 공무원 임용 확대 5개년 계획을 추진 중이지만 지자체는 여성 대통령 시대의 정부 시책과는 따로 가고 있다.

공기업도 여전히 ‘좁은 문’이다. 전국의 30개 공기업 중 여성 임원을 둔 곳은 두 곳이고 부장급 이상의 여성 관리자가 1%를 넘는 곳은 한국관광공사(1.3%)와 부산항만공사(1.2%)뿐이다(CEO스코어 조사, 2013년 1월 기준).

여성할당제는 분명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할당제로 여성 의원이 늘면 정부 역시 여성정책에 관심을 기울이므로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이 더 높아진다. 하지만 폐해도 있다. 양당 정치구조가 자리잡은 정치 풍토에서 조직도, 세력도 약한 여성들은 살아남기 위해 안전한 의제 중심으로 정치를 한다. 지도부와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성평등 의제는 뒷전으로 밀린다. 여성계의 지원을 받아 정치에 입성해놓곤 당 지도부에 순응하는 정치인이 된다. 심지어 여성 정치세력화라는 이름으로 진입한 여성 의원 중에는 반여성적이라고 평가되는 법안에 서명하거나 중산층 이상 여성들의 이익만 대변하는 경우도 있다.

해법은 공천 제도 개혁이다. 정당의 당헌, 당규를 보면 공천 방식이나 공천관리위원회에 대한 규정이 모호하다. 특히 지방선거는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당협 위원장의 의중에 따라 후보자 공천이 이뤄지는 지역이 많다. 능력이 있어도 공정하지 못한 공천 심사 방식 탓에 본선에 진출할 자격조차 못 얻는다. 현직 여성 의원이 재선의 벽을 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당 여성위원장의 성평등 의식도 중요하다. 유승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턱걸이’로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여성 당원이 50%에 육박하는데 왜 그렇게 최고위원직에 힘겹게 올랐을까. 정당 여성위원장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방증이다.

이제는 양적 변화에만 치중하지 말자는 목소리도 높다. 오 부소장은 “연대체를 통해 여성 대표성을 갖고 의회에 진출한 의원과 정치 계약을 맺어야 한다”며 “이런 방식으로 미래 여성 정치세력을 키워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여성 정치인들의 초당적 연대가 절실하다. 정당을 넘어서서 여성 정치인들의 세력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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