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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말 열린 한국인권재단의 ‘제주도 인권학술대회’에 참가한 인권운동가들의 염려(?)를 한 몸에 받은 구수정 씨. 베트남 호치민 국가대 대학원 역사학 석사과정, 좀 더 구체적으론 베트남전의 현대사적 의미를 연구하는 구씨가 99년 5월부터 우리 사회에 던진 문제의식 때문. 그는 한국군의 베트남전 개입 배경과 의미를 파고 들다가 그 부작용으로 베트남 곳곳에서 행해진 한국군의 양민 학살 흔적들을 발견했다. 이 사실을 '한겨레21'에 5월과 9월에 걸쳐 기고했고, 이번 학술대회에서도 발표했기에 제주도 출신 베트남 참전 군인들이 한때 대회장에 몰려와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베트남으로 다시 떠나는 그를 출국 직전 만나봤다.

“그동안 막연하게나마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 소문을 들었지만,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 중 우연히 입수한 베트남 정부의 공식 문서는 이 소문을 사실로 확인시켜 줘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3년 전 입수한 문서는 전범조사위원회의 ‘남부 베트남에서의 남조선 군대의 죄악’이었죠. 그 후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 문제를 묻어둔 채 21세기를 맞을 수 없다는 강박관념에 몰려 결국 이 사실을 국내에 알리게 됐죠.”

구씨가 처음 이 사실을 '한겨레21'에 기고했을 땐, 논문에 가까운 딱딱한 형식이었기에 ‘유언비어다’, ‘일본의 사주를 받았다’ 등 숱한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후 9월 현지의 수백 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발로 쓴 르포 형식의 기사를 다시 기고했을 땐 대부분이 격려성인 5백여 통의 메일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후 건강치과의사협의회가 최근 학살현장 중 하나인 꾸앙응아이성 선띤현에 진료를 위해 출국하는 등 의료진의 자원봉사가 잇따르고, 당시 참전 군인들 중에도 태도 변화를 보이는 이들이 생겨났다고 구씨는 전한다. 또한 구씨의 보고서를 토대로 정부 관련기관들도 진상을 조사중이라고 한다. 구씨는 베트남전 최대 학살현장인 밀라이에 미국 정부가 대규모 학교·종합병원 건설과 녹지조성사업을 지원하고, 위령탑을 세워 지금도 참전 군인들이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실을 들어 우리 사회에 베트남전 치료책의 한 대안을 제시한다.

“20세기 초반부터 전쟁으로 인한 숱한 상처, 가깝게는 정신대 문제, 노근리 양민 학살까지 다 한 고리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고리를 끊지 않고 역사의 한 장, 한 장을 어떻게 넘기겠습니까.”

월간 '사회평론' 기자로 활동하다가 ‘운명처럼’ 베트남에 건너간 구씨는 박사과정에선 전쟁중 여성폭력을 연구할 계획이다. 관련 연구자료들과 도움말 지원도 절실하다고.

구수정 씨의 이메일 주소는 ‘chovietnam@hotmail.com, vnintobank@hcm.fpt.vn’.

'박이 은경 기자 pleu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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