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 마음을 바꾸고 즐기는 게 강간이지.”

사이먼 웨스트 감독의 99년 작 '장군의 딸 The General's

Daughter'(18세, CIC)에 나오는 대사다. 군 내에서 일어난 여성 장교

의 살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군 상층부의 비리를 파헤

치는 심리 스릴러물인 '장군의 딸'은 놓쳐서는 안될 명작도 아니고,

여성의 관점에서 본받을 만한 면이 있는 영화도 아니다. 그럼에도 굳

이 이 영화를 소개하는 것은 위 대사를 들었을 때의 충격이 워낙 컸

고, 강간에 대한 남성의 무지막지한 시각, 군 내에서의 여성 문제를 짐

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 특수 수사요원인 폴 브레너 대령(존 트라볼타)은 텐트처럼 사지가

묶인 알몸으로 강간당한 뒤 살해된 심리 조작 교관 리즈 켐벨의 사건

을 맡게 된다. 리즈는 곧 퇴역하여 부통령 후보로 지명될, 베트남전의

영웅이며 존경 받는 군인의 표상인 조 켐벨 장군(제임스 크롬웰)의 외

동딸로 육사를 수석으로 졸업한 촉망 받는 장교였다. 강간 상담 수사

관 사라 선힐 중위(메들린 스토우)와 한 팀이 되어 조사하던 폴은 리

즈가 육사 시절에 겪은 엄청난 윤간 사건을 알게 된다.

여군이 등장하는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다. '지 아이 제인' '커리지

언더 파이어' '어 퓨 굿맨' 모두 소재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군대 내 동성애 인권을 다룬 실화극 '두 여자의 사랑'만이 진지한 여

군 영화 내지 여성 영화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장군의 딸'에서 볼

수 있듯 강간 상담 수사관 직책이 있다는 점, “군대 내에서 여자가

감수할 것이 많다”는 대사 등은 군 내에서의 여성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장군의 딸'은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사라 선힐의 역

할은 구색용으로, 리즈 켐벨의 살해 사건은 센세이셔널로 묶어 놓았지

만.

원작자에 대한 정보를 얻고 나면 이런 한계가 더 쉽게 이해된다. 베

트남전 참전 경험이 있다는 원작자 넬슨 데밀(56세)은 간호 장교가 고

작이었던 자신의 군대 시절에 비해 여군이 엄청나게 늘어났고, 일반인

들이 군대 내에서의 살인 사건 수사를 잘 모른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즉 여성 장교에 대한 윤간과 살인을 소설

소재 이상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그는 여군에 대해 “선사 시대로 돌

아갔으면 좋겠다”고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여군 자신이 글을

쓰지 않는 한 그들이 남성 위주 사회에서 겪게 되는 고통을 속속들이

이해하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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