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의 마리아 엔더스

 

조앤(클로이 모레츠)의 젊음을 동반한 아름다움마저 질투한 마리아 엔더스(줄리엣 비노쉬).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스틸컷
조앤(클로이 모레츠)의 젊음을 동반한 아름다움마저 질투한 마리아 엔더스(줄리엣 비노쉬).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스틸컷

연상의 상사인 ‘헬레나’를 유혹해 자살로 몰고 가는 젊고 매력적인 캐릭터 ‘시그리드’ 역으로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가 된 마리아 엔더스. 그로부터 20년 후 마리아는 자신을 톱 배우로 만들어준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를 썼던 작가의 부고를 받는다. 대리 수상을 하게 된 마리아는 시상식 멘트를 준비하며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떠올린다. 시상식에서 연극을 리메이크하려는 젊은 연출가의 출연 제안을 받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역할은 주인공이 아닌 나이 든 상사 ‘헬레나’. 망설임 끝에 어렵사리 역할을 승낙한 마리아는 리허설을 위해 알프스의 외딴 지역인 실스마리아를 찾는다. 

마리아는 나이가 들었지만 그간 여배우로 쌓은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을 절대 허락할 수 없다. 시상식에서 십수 년 전 자신에게 작업을 걸었던 상대 배우가 술을 한 잔 더 하자고 하자, “됐다”고 거절하면서도 자신의 호텔 룸 넘버를 알려주고 그를 내심 기다린다. 또한 그녀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예쁜 것들 혹은 젊은 것에 대한 묘한 질투와 부러움이다. 그녀는 늙는다는 것, 세상의 주목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시그리드 역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도 그녀가 헬레나, 즉 늙은 여자의 역할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주연 역할에서 멀어지고, 대중의 무관심이라는 다가오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늘 현실에서 도피해 왔다. 그녀는 인터넷을 멀리했으며,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라이징 스타를 단 한 명도 알지 못한다. 비서 발렌틴이 그들에 대해 설명해 줄 때마다 “10대들의 세상에서나 유명한 거겠지” “유명해봤자 걔네들 별에서나 얘기지”라는 식으로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세계를 구분한다. 새롭게 시그리드 역에 발탁된 조앤도 SF 영화에나 출연하는 풋내기로 폄하하고 전혀 관심이 없는 척하지만, 멀리하던 인터넷에서 몰래 조앤의 사진을 찾아 볼 정도로, 젊은 시절 그녀가 받았던 스포트라이트와 관심에 질투를 느낀다. 마리아는 발렌틴이 조앤의 팬이라고 하자 “나보다도 걔가 좋아?”라고 묻는다. 

영화 속 연극의 제목이자 영화의 원제이기도 한 ‘실스 마리아의 구름’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일단 이 구름은 실스 마리아를 지나 장크트모리츠로 이어지는 거대한 뱀 형상을 하고 있어서 일명 ‘말로야 스네이크’라고도 불린다. 영화 속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말로야 스네이크’는 영화의 가장 상징적이고 압도적인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실스 호수를 지나 장크트모리츠까지 연결된 이 거대한 자연 현상은 아름답고 장대한 몽환적 이미지로 최면처럼 인간에게 몰려온다.       

어렵사리 실스 호수의 언덕을 찾아가 말로야 스네이크 현상을 목격하게 된 마리아는 동행하는 길에 마법처럼 비서 발렌틴이 사라져버린 것을 깨닫는다. 마리아는 이 언덕에서 홀로 장대한 구름덩어리들을 바라보며,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환영과 같은 해방감을 맞게 된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의 여배우들의 이야기는, 삶이라는 무대에 오른 보통 인간의 이야기로 자연스레 확장될 수 있다. 과거에 대해 집착하고, 다른 사람의 관심과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며, 현실에서 끊임없이 도망을 모색하는 우리의 모습 말이다. 표면으로는 별처럼 반짝이는 스타성, 즉 나를 꾸미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이와는 다르게 쓸쓸하고 외롭고 두려움에 가득찬 내면을 지닌 내 인생의 주연배우인, 나의 모습 말이다. 

마리아는 이제 과거에 자신을 가두는 대신, 미래를 예상하고 새로운 역할에 자신을 내어 맡긴다.  영화의 마지막 ‘말로야 스네이크’의 연극 무대에서, 실루엣으로 나타나 담배를 피워 무는 마리아의 그림자에 수많은 마리아의 뒷모습이 겹친다. 그리고 이전과 다르게 어떤 평온감이 스크린을 한가득 메운 그녀의 얼굴을 감싼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 실제와 허구, 과거와 미래, 꿈과 현실이 섞여 들어가는 구름 언덕.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오고-가는 생의 모든 것들. 인간이 비로소 자신의 맨얼굴을 대면하는 곳. 내 안의 실스 마리아에 이젠 가보고 싶다.     

#. 심영섭의 영화 속 인물탐구는 이번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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