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12월 18일 서울 노원구는 구청 대강당에서 성희롱·성매매 및 성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했다.
지난 2014년 12월 18일 서울 노원구는 구청 대강당에서 '성희롱·성매매 및 성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했다. ⓒ서울 노원구

현 정부 들어 성폭력이 척결돼야 할 사회악으로 규정되고 관련 정책이 다양하게 실시되는 등 성폭력 문제는 국민 안전의 표지처럼 홍보돼 왔다. 그럼에도 2014년 한 해 동안 이전과 다름없이 성폭력사건이 연이어 발생했고, 특히 다양한 영역에서 성희롱 발생이 끊이지 않았다. 성희롱을 포함한 성폭력은 개인의 자질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적 산물이어서 단기간의 정책 처방으로 근절될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더라도 연속되는 성희롱 정국은 진단과 대처에 대한 사회적 숙고가 필요한 시점임을 말해준다.

2014년에 여론화됐던 성희롱은 전 국회의장, 현직 검사, 지방자치단체장, 대학교수 등 가해자의 면면이나 지방자치단체 출연기관 및 사업소, 용역업체, 식당, 골프장, 학교, 출판사 등 발생 사업장의 종류가 다양하다. 사회 곳곳에서 힘 있는 사람들이 태연히 성희롱을 저지르고 있는 것을 보면 대통령 순방길의 대변인 성희롱을 비롯한 이전의 사건으로부터 우리 사회가 진정한 자성의 기회를 갖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성희롱 가해자의 변명과 항변은 일관되다. 성희롱 한 적이 없다, 성적 의도가 없었다, 딸 같아서, 귀여워서 한 말이나 행동이다, 왜 성희롱 현장에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는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다가 시간이 지난 후에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라는 등 마치 한 사람이 하고 있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성희롱 판단에 있어서 가해자가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합리적 인간 혹은 합리적 여성의 관점에서 가해자의 성적 언동이 성희롱으로 느낄 만하다고 인정될 수 있는 지가 중요하다. 또한 성적 언동이 발생했던 자리에서 피해자가 성희롱이라고 항의를 했거나 거부의사를 표명했는지 여부도 판단에 결정적 요소가 될 수 없다. 고용이나 업무상의 관계에서 가해자는 대부분 지위나, 권한, 성별, 연령 등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다양한 권력을 가진 갑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피해자가 성희롱 상황에서, 혹은 성희롱 직후 항의를 하거나 대처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 제기 후의 불이익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데, 성희롱을 다른 사람에게 알릴 것을 결정하는 것은 사직이나 학업을 포기할 것을 결심하는 수준에 버금가는 문제라 피해자가 적절한 대응을 못 하기가 쉽다.

따라서 가해자의 대다수 항의 내용은 성희롱을 여성에 대한 평등권과 노동권 침해로 규정하고 판단기준을 만들어온 국제적 합의 수준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는 논리다. 또한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실시가 의무화돼 있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거나 받았다 하더라도 교육 내용을 내 문제로 성찰해보지 않은 결과다.

최근 성희롱 사건 여론화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그동안 장애인, 아동 등 잔혹한 신체적 상해를 동반한 성폭력에 주로 주목해왔던 우리 사회에서 일상 속 성희롱·성폭력이 가시화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전에는 가해자의 권위나 권력 때문에 문제제기를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거나 피해자가 참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여겨졌던 문제들이 성희롱으로 인지되고 피해자가 용기를 내서 문제 제기를 할 수는 있는 사안으로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이뤄진 것이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데 20여 년이 걸렸다.

성희롱 발생의 근본적 차단은 어려울 수 있다. 다만, 직장이나 학교 등에서 끊임없이 교육 등을 통해 성희롱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예방의 의무를 다함과 동시에 성희롱을 문제시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또한 성희롱 발생 시 피해자의 편에서 지체 없이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성희롱이 피해자의 편에서 구제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사회 구성원들에게 줄 때 성희롱은 줄어들 수 있다.

성희롱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 이 시기가 성희롱에 대한 관점을 정립하고 섬세한 대책을 정립해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2015년, 우리 사회가 성희롱을 제대로 직면하는 해로 삼아야 한다.

 

 

지난 2014년 12월 18일 서울 노원구는 구청 대강당에서 성희롱·성매매 및 성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했다.
지난 2014년 12월 18일 서울 노원구는 구청 대강당에서 '성희롱·성매매 및 성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했다. ⓒ서울 노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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