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청계천로에 위치했던 옛 여성가족부 청사 건물. ⓒ여성가족부
서울 중구 청계천로에 위치했던 옛 여성가족부 청사 건물. ⓒ여성가족부

2008년은 새롭게 이명박 정부가 시작하는 해였다. 새 정부는 정부조직 축소에 나서는 바람에 업무를 시작도 하기 전에 조직 개편의 갈등을 겪었는데, 여성가족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새 정부의 조직 개편 방향은 여성가족부를 복지부와 통합해 생애주기별 여성가족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결국 여야가 합의하면서 보육과 가족정책 두 국이 복지부로 이관되는 대신 여성부는 존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 과정이 무척 어수선했다. 직원들이 대거 복지부로 옮겨갔고 여성부는 102명인 초미니 부처가 됐다. 당시 실국장이 3명밖에 없었으니 얼마나 작았는지 부처라고 하기보다는 큰 부처의 실 규모였다. 

이명박 정부의 첫 여성부 장관이 된 변도윤 장관은 청문회를 통과한 첫 장관이었다. 그해는 제2의 IMF로 불릴 정도로 경제위기가 심각했다. 미니 여성부는 여성경제활동 분야에 주력했다. 기존 여성인력개발센터에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지정해 여성취업훈련, 취업상담, 구직지원 등 취업지원 활동에 주력했다. 이를 계기로 전국에 여성새로일하기센터라는 무료 여성직업훈련 프로그램을 확대할 수 있었고 많은 경력단절 여성이 혜택을 볼 수 있게 됐다. 

미니 여성부 시절의 가시적인 성과를 들라고 하면 성폭력분리입법에 대한 부처 간 합의를 한 것과 해바라기아동센터를 양적으로 크게 확충한 것을 들 수 있다. 당시 성폭력 보호와 처벌에 관한 법률은 하나로 돼 있었고 법무부가 주관 부처였다. 여성부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관장하도록 돼 있었다. 실제 성폭력 보호 업무를 추진하면서도 법 개정 권한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성가족부가 하고 있는 성폭력 관련 정책들을 입법화하기 어려웠고 법적 근거 없이 추진하고 있는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법적인 근거 없이 예산만 확보해 사업을 추진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해서 꼭 탈법이나 불법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정부 부처에서 하는 일들이 모두 법적인 근거를 갖고 하는 것도 아니고 예산을 확보하면 예산도 국회를 통과하기 때문에 법과 비슷한 권한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성폭력분리입법은 여성계에서도 오랜 숙원이었지만 법무부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2009년 변 장관은 그 법에 관한 문제점 보고를 받더니 “그럼 내가 김경한 법무부 장관과 얘기해보지요”라고 했다. 우리는 속으로 ‘쉽게 안 될 텐데’라고 했는데 정말 담판을 짓고 오셨다. 김 장관은 그 문제점에 관한 이야기를 듣더니 “일리가 있는 주장이네요.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하고 합의를 해주었단다. 실무자들끼리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일이 장관들끼리는 이렇게 쉽게 풀릴 수가 있다. 아무래도 장관들은 그 부처의 장관이기도 하지만 정부의 국무위원이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상황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2009년 성폭력 분리 입법에 대해 장관들끼리는 합의를 이뤘지만 실무진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법 조항 하나하나 협의를 거쳐서 조정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장관들끼리 협의가 끝나고 나서도 마무리가 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성폭력 분리 입법이 최종 국회를 통과한 것이 2011년이니 장관끼리 합의하고도 어연 2년이나 흐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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