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다미아 넛 ⓒ온라인 커뮤니티
마카다미아 넛 ⓒ온라인 커뮤니티

마카다미아 넛의 문제가 뭔가 생각해봤다. 무엇이 재벌 3세를 그렇게 기분 나쁘게 한 것일까. 단지 매뉴얼을 지키지 않아서였을까. 혹시 땅콩 봉지를 뜯는 노동 따위를 감히 내게 시키다니, 이것이었을까.

미래창조과학부는 창조경제를 ‘자본·기술·영업·노동 중심의 경제틀이 아니라 아이디어나 창조적 마인드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경제틀’이며 ‘사람이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한 술 더 떠 ‘이제 한 사람의 개인이 국가의 가치를 높이고 경제를 살려낼 수 있는 시대’라고 주장한다. 나는 이 세 줄의 설명이 이 겨울 마카다미아 넛에 대한 원인이자 결과이고 암담한 미래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개인일 수 없는 우리들은 매뉴얼을 몰라서 비행기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다. 마카다미아 넛을 호두라고 우겨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는 갑을병정과 그 밑의 인턴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개인일 수 없는 이유이다. 유령이 아닌 이상 자본, 기술, 영업, 노동을 벗어난 창조는 어떻게 가능할 것이며 사람이 핵심이라고 말해봤자, 그 사람은 조현아류의 ‘개인’일 뿐이란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핵심에 우리들은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2014년을 살아낸 우리들의 진실이다.

유난히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은 한 해였다. 2012년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시작으로 부품사회, 격차사회, 잉여사회, 팔꿈치 사회, 분노사회, 투명사회, 단속사회 심지어 사회를 말하는 사회라는 책도 나왔다. 몇 년간 이어졌던 우리들의 삶이 담기는 그릇인 사회에 대한 질문 가운데 우리는 세월호를 침몰시켰고 그해 끝자락에 마카다미아 넛 사회를 맞이한 것이다. 정작 큰 책임은 묻지 않고 사소한 것에 분노하는 이유는 그 사소함에 뼈아픈 진실이 담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급 5000원인데 어느 재벌 회장은 일당 5억짜리인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 재벌 3세의 처벌에는 관심 없다. 이렇게 수많은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도 사회의 다수가 여전히 이 터널에서 나갈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는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에 대해 말하고 싶다. 아니, 내가 살고 싶은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나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땅콩 봉투를 뜯는 허접한 일을 하는 서비스노동과 타인의 표정을 살피는 감정노동과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아야 하는 알바 노동, 목숨을 걸고 시간 내 배달해야 하는 청년 노동, 생명시계를 무시하는 야간 노동, 타인을 돌보는 값싼 돌봄노동, 사회를 먹여 살리는 창조 노동이 아닌 나머지 허접한 노동에 대해 나는 무어라 말할 것인가. 정말로 사람이 핵심이고 소중하다면 삶을 유지하고 이어가는 모든 노동에 대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지켜갈 것인가.

눈물의 갑오년을 이제 떠나보내야 할 것 같다. 액땜이라도 하고 싶다만, 힘들게 노동과 인권과 민주주의와 마을과 시민단체를 지켰던 모든 분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보낸다. 새해에는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다른 사회를 꿈꾸고 두려움 없이 뚜벅뚜벅 걸어 나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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