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각/소설가

영국에서는 시골의사가 환자 2백여 명을 의료기술로 죽였고, 스페인에서는 얼음

덩어리가 떨어졌고, 하늘을 날던 비행기는 오늘도 추락했거나 납치되곤 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충격적인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성신문'이 또 한 번

캐낸 동해 바닷가의 야만적인 성추행도 그 중 하나다. 어떤 충격은 사람의 불완

전성에 연유하며, 어떤 충격은 도무지 납득도 안 되고 설명할 길이 없기도 하다.

물론 개중에는 너무나 시원해서 살맛 나는 충격도 있다. ‘총선시민연대’의 출

범 같은 일이 그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오늘 우리 모두 조금도 충격적으로 받아

들이지 않고 있어서 되레 그 어떤 일보다 충격적인 광고 이야기를 하나 할까 한

다. K증권의 광고가 그것이다.

증권광고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먼저 고백해야 할 일은 필자가 증권에 대해 아

는 게 없다는 점이다. 필자는 ‘박찬호’를 모른다고 언젠가 어떤 사람에게 된통

조롱을 받은 적도 있다. “박찬호도 모르세요?” 하고 묻는 얼굴은 경멸이 서려

있었다. 약이 오른 나는 “그럼 당신은 엘리아데나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을 아

느냐, 레이첼 카슨을 아느냐?”고 되물었다. ‘황현의 '오하기문'을 아느냐, 게

바라…를 아느냐?’, 가만히 놔두면 계속할 수도 있었다. 흐르는 세상 물결 속의

사람은 물결 밖의 사람을 늘 경멸하곤 하는데, 그거야말로 예의 없는 태도가 아

닐 수 없다. 박찬호가 유명한 야구선수인 줄 모르고 살면서도 조금도 불편하지

않은 필자가 코스닥이나 나스닥을 알 리가 없다. 다우지수니, 환매니 벤치마킹을

알 리가 없다. 글로벌투자시대 어쩌구 해도 우선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광고에

대해서도 필자가 알고 있는 것은 ‘거기에 한번도 진실이 담긴 적이 없다’는 정

도밖에 모른다. 세상에 대한 필자의 자발적이고도 자기확신에 가까운 편견은 그

정도다. 그렇지만 K증권의 광고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처음 그 광고를 만났

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광고 내용은 이렇다. 주유소에서 일하는 젊은이가 주식시장이 떠올라 있는 모니

터에 빠져 있는 주인에게 전표나 영수증을 요구하는 장면이 먼저 흐르고, 자신이

투자한 주식의 급등으로 너무나 좋아서 얼이 빠진 주인은 손사레를 친다. “(기

름을)가득 넣었다”고 젊은이가 말하자, 삼매에 빠진 듯한 얼굴의 주인은 “그냥

가시라고 그래”, 한 뒤 다시 손을 흔든다. 그리고 그 광고를 만들어 내보낸 ‘K

증권’을 알리는 멋들어지게 진지한 목소리가 흐르고 K증권의 로고가 화면에서

잠시 빛난다. ‘우리’를 통하면 누구나 돈벼락에 맞을 수 있다고.

‘세상이 아무리 막 간다 해도 이럴 수는 없다’는 게 그 광고를 처음 만난 필자

의 소감이었고, 그 소감은 가히 ‘충격’이라 말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 광고가

지시하고 있고 드러내고 있는 가치관 속에는 노동의 가치와 삶(생활)의 존엄성은

전격적으로 배제되어 있었다. 그 가치전복적인 광고가 야심찬 광고회사의 한 봉

급쟁이에 의해 착안되고 검토되어 최종적으로 채택되기까지의 시간들과 그 시간

속에 잠겨 있던 흥분의 얼굴들을 떠올리라치면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잠시만 생각해 보면, 충격적인 광고가 어디 그 광고뿐일까. 얼마 전까지

줄창 흐르던, 지금은 그 명칭에 온갖 서민들의 원한(?)이 묻어있는 ‘세계기업 대

우’ 광고만 해도 그랬다. 어린이와 지구의가 등장하던 그 광고에는 온갖 반환경

적인 용어들이 사그리 동원되어 있었다. ‘무한경쟁’‘세계 일류기업’‘경쟁

력’… 따위들이 그것이었다. ‘생산성’‘정복’같은 말도 있었나, 지금은 아리

송하다. 그 광고가 때없이 우리들 생활에 침범할 때에도 사실 필자는 벌레 씹은

감정을 가누기 힘들었다.

환경문제를 필자는 어렵게 생각지 않는다. ‘환경’이라는 말에 문제가 있어서

다르게 표현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그것이 제어되지 않는 우리 시대의 욕

망의 문제, 그래서 거기에서 연유한 인간(사회)의 부패문제라 생각한다. 분할하고,

경쟁하고, 낭비하고, 비밀스럽고, 돈을 만능으로 여기는 가치관의 문제라고 생각

한다. 그래서 이른바 낮은 층위의 세계관/자연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층위의 세계로 가야 할까. 그러나 답은 확실하게 나 있고, 일찍부터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통합과 공생의 세계, 절약하고 공개하는 시스템, 돈이 아니

라 ‘녹색 감수성’이 존중되는 세상으로 가는 길이 그것이다. 그 반환경적/반인

간적인 광고를 만든 K증권이 마침내 부끄러워하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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