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욕망이 투사된 아이로 자라온 에이미
주체가 되어 본 적이 없는 여성
판타지와 현실 사이의 균열을 견뎌내지 못하는 결혼 생활

 

영화 ‘나를 찾아줘’의 여주인공 에이미. ⓒ영화 ‘나를 찾아줘’ 스틸컷
영화 ‘나를 찾아줘’의 여주인공 에이미. ⓒ영화 ‘나를 찾아줘’ 스틸컷

지적이고 아름다운 하버드 대학 출신의 에이미는 심리학자 부모가 쓴 베스트셀러 동화 ‘어메이징 에이미’의 주인공이다. 어느 날 뉴욕에서 기자 생활을 하던 중 작가인 닉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남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이 부부는 에이미가 결혼 5주년 기념일날 사라지면서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게 된다. 매년 결혼기념일날 에이미가 주도한 ‘보물찾기’를 단서로 하나하나 드러나는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의 실체. 그것은 어메이징한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것이었다. 

영화 역사상 단아하면서도 우아한, 영특한, 귀엽기까지 한 사이코패스 여성의 등장이다. 정말 아내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가 있는지 궁금해하며, “그 머리를 깨 부수고 휘저어보고 싶다”는 남편의 섬뜩 살벌한 첫 대사가 영화 막판에 가면 이해가 될 지경이다. 사실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철저히 닉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자와 외도까지 하고 아내의 실종된 사진 앞에서 해맑게 웃는 이 아저씨가 아내 살해범임에 틀림없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닉은 어느 순간 그저 자기 감정에 솔직한, 평범하고 소박한 미국 아저씨임이 점점 드러난다. 

이에 비하면 에이미의 내면은 훨씬 복잡하다. 영화 ‘나를 찾아줘’라는 한국 제목이 암시하듯, 에이미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욕망이 투사된 아이로 자라왔다. 그녀는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 됐지, 주체가 되어 본 적이 없는 여자다. 설탕 가루가 먼지처럼 흩날리던 날, 그보다 더 달콤한 키스를 나누며 관계를 시작했던 닉과의 관계도 역시 자신이 추구한 것처럼 완벽하리라고 믿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닉이 원하는 아내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부부 생활은 가면 갈수록 실제와 다르게 사이가 벌어진다. 닉은 아내의 혈액형이 무엇인지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녀는 닉을 견디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판타지와 현실 사이의 균열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에 다름없다. 

 

영화 ‘나를 찾아줘’의 여주인공 에이미. ⓒ영화 ‘나를 찾아줘’ 스틸컷
영화 ‘나를 찾아줘’의 여주인공 에이미. ⓒ영화 ‘나를 찾아줘’ 스틸컷

원작자 길리언 플린이 붙인 ‘Gone Girl’이라는 제목처럼 누구한테도 자신의 실체를 보여준 적이 없는 에이미는 끊임없이 정체성 혼란을 겪는 사춘기를 겪는 소녀와 같다. 그녀는 평생 자기 자신을 연기해 왔다. 그래서인가. 그녀가 훨씬 사람답게 보일 때는 닉의 곁에서 떠나 산 속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마음껏 담배를 피우며,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던 때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받아온 마약 같은 세상의 관심을 끊지 못한다. 나름 치밀하게 짠 자신의 계획에 대한 세상의 관심을 연속적으로 확인한다. 급 결성된 커플 강도에게 허무하게 돈을 털리고 난 뒤 베개로 얼굴을 감싸고 속상해하는 그녀는 세상 물정 모르는 가출 소녀와 다를 바 없다.     

사실 그녀는 악착같이 자신의 욕망과 다양한 정체성을 끝까지 끈질기게 추구할 뿐이다. 게다가 닉의 쌍둥이 여동생 마고는 에이미와 달리 닉을 더 이해하고, 감싸주고, 끝까지 오빠 편에 남는다. 닉을 취조하며 진실에 접근하는 여형사 역시 어느 남자보다 유능하고 진지한 편이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이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어떤 면에서 모두 옳다. 감독 데이비드 핀처는 스릴러 장르 속에 현대 여성의 목구멍 깊숙이 숨겨진 자유, 억압, 성취 같은 삶의 문제를 교묘히 숨겨 두었다.        

영화의 마지막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부부는, 이 세상 사이 나쁜 모든 부부가 그러하듯, 서로에게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로 살아갈 것이다. 에이미는 더 우아한 방식으로 엄마 역할을 연기해야 한다. 모두가 시선의 덫에 걸려 누가 더 멍청한지 내기를 하는 것 같은 150분간의 참혹한 역할극인 ‘나를 찾아줘’. 에이미는 월간 잡지 속 럭셔리한 삶을 동경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장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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