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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 애가 외롭겠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얼른 하나 더 낳아야

지!”

내가 외동딸 엄마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렇게 한 마디씩들 한다.

둘째라니... 하나 키우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런데 둘째 낳기를 권

하는 사람들은 꼭 이런 말들을 덧붙인다.

“애가 너무 외롭잖아. 혼자 크면. 형제가 있어봐. 첨엔 좀 힘들어도

조금 있으면 지들끼리 잘 놀아.” 혹은 “혼자 크면 버릇도 나빠지

고, 이기적으로 되잖아”, 또는 (눈치를 좀 살피면서)“아들이 하나

있어야지...” 등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잠시 멍해진다. 어? 어떻게 사람의 외로움을 없

애 줄 수 있지? 나도 때론 세상에 혼자 던져진 듯한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외로움이 행복한 경험은 아니겠지만 외로움을 내 삶에서

완전히 없앨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고. 외로우

니까 친구도 만들고 사람들과 만나려는 거 아닌가.

애가 외로울까봐 둘째를 낳는다는 건 너무 상투적인 이야기다. 부

모가 될 당사자가 아이를 세상으로 불러낼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는

지가 더 중요할 텐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나에게 ‘너 준비됐

니?’라고 묻지는 않는다. 내가 먼저 둘째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먼저 애를 낳으라고 권한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

는지, 어떤 상황인지도 잘 모르면서.

나에겐 더 이상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다. 나는 아이와 더불어 잘

살기 위해 ‘내 인생의 필수’를 잘 지켜나가고 싶다. 내가 행복해

야 아이도 행복할 테니. 내가 사랑하는 아이, 사랑하는 일, 사랑하는

친구들... 나의 일상을 이루는 이 모든 것들이 조화로워야 아이와 나

모두 행복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나는 둘째 안 낳기를 일

찌감치 ‘선택’했다. 둘째 안 낳기를 선택한 대신 나는 내 아이를

위해 친구 만들기를 한다.

딸애가 다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는 바쁜 엄마들이 많다. 나도

바쁘다. 그래서 우리는 저녁에 품앗이로 또 공동육아를 한다. 일주일

에 두세 번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딸애 친구들을 데리고

온다. 아이들은 우리 집을 거의 자기 집처럼 생각한다. 장난감이 어

디 있는지, 먹을 것들이 어디 있는지도 잘 안다.

애들하고 밥 먹고 과일 좀 먹고 나면 별로 할 일이 없다. 자기들끼

리 ‘엄마놀이’, ‘병원놀이’하면서 재밌게 잘 놀기 때문이다. 언

제 시간이 가는지 모르게 저녁시간이 후딱 지나고... 밤이 되면 엄마

나 아빠가 애들을 데리러 온다. 그러면 애들 부모하고 나하고 또 차

한 잔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고 하다가 집으로들 돌아간다.

내가 일이 있는 날엔 또 다른 엄마가 우리 딸을 저녁에 돌봐 준다.

이번 어린이집 방학 때에도 조합원들과 애들을 다 데리고 산정호

수로 놀러갔었다. 콘도 하나에 좀 비좁긴 했지만 밥도 같이 해먹고,

애들하고 눈썰매장 가서 신나게 눈썰매도 타고... 밤엔 부모들끼리

술파티도 하고... 얼어붙은 산정호수에서 추억의 꼬챙이 썰매도 탔다.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딸애는 자기 장난감을 서로 양보하면서

가지고 노는 것에도 익숙해졌고, 작아진 옷가지들을 어린이집 동생

들에게 선물할 줄도 알게 되었다. 올해로 다섯 살이 된 우리 딸. 조

금 더 크면 나는 아이와 여행을 많이 다니려고 한다. 여기저기 새로

운 경험을 하고 넓은 세상과 만날 기회를 많이 주고 싶어서이다.

사실 이런 노력들로 내가 얻은 것들도 많다. 애들 먹이고, 오줌 뉘

고, 똥 치우고, 재우고 하면서 나도 아이들과 친구가 된 것이다. 나

에겐 우리 딸 말고도 이웃에 사는 둘째 딸, 큰아들, 작은 아들... 자

식들이 아주 많다.

내 집 울타리를 넘어 조금만 정을 나누면 서로 외롭지 않을 수 있다

는 걸 우리집 가득 늘어놓은 장난감과 아이들의 웃음소리, 싸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새삼 느낀다. 세상엔 아이가 외로움을 스스로 극복

할 수 있게 돕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

들이 아주 많다. 둘째 낳기는... 그 방법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이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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