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6일 작년에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8번 문항이 ‘오류’라는 항소심 판결이 났다. 이번 판결 이후 부실한 수능 관리를 놓고 비판이 커지고 있다.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현 원장이 올해 4월에 취임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평가원장이 책임지고 물러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2008학년도엔 물리Ⅱ에서 복수정답이 인정돼 평가원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한 적이 있다. 국가표준화시험인 수능에서 오류가 있다는 것은 분명 문제다. 더욱이 우리나라처럼 대학입시에 민감한 사회에서 대입시험 문항에 오류가 있다는 것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 볼 때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수능시험 오류에 민감하게 됐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 보게 된다. 사회적 이유로서 우리 사회가 학벌이 중요시되는 사회라는 점, 그래서 한 문제 차이로 대입 당락이 결정되는 것에 대해 예민하게 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수긍하는 바이다. 그렇다면 수능시험 자체가 갖고 있는 이유는 없을까?
우선 수능이 지금처럼 ‘선발시험’이 아니라 ‘자격시험’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수능은 ‘대학수학능력시험’ 그 이름 자체로 보면 ‘자격시험’에 가까운 이름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턴가 대입선발 과정에서 대학도 못 믿고 고등학교도 못 믿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어 ‘국가표준화시험’인 수능의 성적이 가장 ‘신뢰’ 받는 대입전형 자료로 활용됐고, 따라서 수능은 현실적으로 ‘선발시험’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수능 문항 하나하나의 점수에 민감하게 됐고, 따라서 이번처럼 문항 하나의 오류에 대해서도 더욱 민감하게 됐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수능이 현행처럼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상대평가’의 경우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내 ‘표준점수’와 ‘등급’이 결정되는 반면에 ‘절대평가’는 내 점수로만 성적이 결정되기 때문에 ‘절대평가’가 ‘상대평가’에 비해 시험 민감도는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절대평가’라 할지라도 문항 하나하나의 점수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평가’에 비할 바는 아니다.
끝으로 수능이 ‘객관식 선다형’ 시험이 아니라 ‘주관식 서술형’ 시험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정답 시비가 있다는 것은 시험에 ‘정답’이 있다는 것인데, 이는 수능이 ‘객관식 선다형’ 시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주관식 서술형’ 시험이라면 예외적인 일이 된다. 주관식 서술형 시험엔 ‘채점기준’과 ‘모범답안’이 있을 뿐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대입선발 과정에서 ‘객관적 공정성’을 강조하다 보니, 채점에 주관적 관점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객관식 선다형’ 시험을 선호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학교교육도 ‘정답교육’이 돼 버렸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교육적인’ 의미에서 긍정적인 일인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수능시험을 자격시험화 하자, 절대평가로 하자, 주관식 서술형으로 출제하자는 등등의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주장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유럽의 교육 선진국의 경우엔 국가표준화시험이 대부분 자격시험이고, 절대평가이고, 주관식 서술형 시험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안 될까? 우리랑 맞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가? 혹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고집스러운 관성’ 때문은 아닌가? 수능한국사는 이미 절대평가로 하기로 했고, 요즘은 수능영어 절대평가화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문·이과통합형교육과정 논의의 연장 선상에서 2021학년 수능에 대한 논의도 예정돼 있다. 그렇다면 이참에 수능제도에 대해서 근본적인 문제에서부터 다시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