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 주거기준’이 아니라 ‘적정 주거기준’으로
한부모가구·비혼1인가구 주거환경 더 열악해
비혼 1인가구 정책 대상에 포괄해야

 

서울살이 15년 차. 대학 시절 경험했던 하숙과 친구와의 자취를 거쳐 혼자 살기 시작한 지도 어언 10여 년. 30대 중반의 나이를 지나고 있지만 비혼 여성인 김미영(가명·35)씨의 주거는 아직도 ‘불안정’하다. 2000년대 초반 서울의 번화가 중의 하나인 마포구 홍대 앞에 원룸을 얻을 때만 해도 전세금 4500만원으로 살 집을 구할 수 있었다. 간단한 세간을 들여놓고 나면 두 사람 눕기도 빠듯한 좁은 원룸임에도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해가 지날수록 6000만원, 7000만원으로 오르더니 그나마 3년 전 지금의 집으로 옮길 즈음에는 전세 자체를 구하기 어려웠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이면 저렴한 축에 들 지경이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서울에서 생활비 충당하기도 어려운 판에 해마다 1000만원 단위로 오르는 전셋값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월세로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서울 청년 3명 중 1명이 속해 있다는 ‘신주거빈곤층’인 셈이다.

열악한 주거환경은 여성들에게 더욱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위험’이다. 위생이나 쾌적함은 차치하더라도 반지하나 옥탑방 등은 부실한 ‘안전’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성들은 고용과 급여 등에서 남성에 비해 더욱 열악하기 때문에 치솟는 주거 비용으로 발생하고 있는 ‘신주거빈곤’ 문제는 곧 ‘여성문제’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또한 만혼과 비혼의 증가로 1인 가구주가 되는 여성들의 경우에는 정책 대상에서도 소외돼 있어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지난 10월 6일 ‘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한국여성민우회가 ‘우리는 이런 집을 원한다’는 제목의 ‘적정주거선언문’을 발표했다. ‘세계 주거의 날’은 1986년 ‘모든 사람에게 안락한 주거가 필요하다’는, 주거가 기본 인권임을 알리기 위해 유엔이 제정한 날로 올해 28번째를 맞았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은 올해 4월부터 8월까지 수도권 지역의 신주거빈곤층의 주거 현실을 들여다보는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특히 사회적 처우가 열악한 비혼 1인가구 여성을 중심으로 한 인터뷰에서 많은 여성이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주거비로 쓰고 있었지만 주거환경은 열악하기만 했다.

진현(가명·23)씨는 “월세 부담 때문에 반지하 집으로 이사했는데 습기 때문에 곰팡이와 해충이 사라지질 않고, 빛이 없어 잠을 깨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하윤(가명·29)씨는 “집에 창문이 있지만 장식일 뿐”이라며 통풍이 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다른 건물이 가까워 바람이 가로막히고 창문 바로 옆이 주차장이라 노출을 막기 위해 발이 쳐져 있다”며 “창문과 대문까지 열고, 선풍기를 틀어놔도 공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많은 여성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반지하나 옥탑방, 낡은 다세대 주택 등은 위생과 안전뿐만 아니라 ‘혼자 사는 여성’에 대해 집주인이나 중개인들의 ‘가볍게’ 혹은 ‘우습게’ 보는 시선도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 중에 하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여성 가구주 가구는 25.9%를 차지하고 있다. 높은 이혼율과 더불어 만혼과 비혼이 증가하고 있어 여성 가구주 가구는 앞으로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변화하는 가족형태에 적절한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여성 가구주 가구의 주거실태 및 정책방안 연구’에서도 비혼 1인가구나 저소득 한부모 가구 여성들의 주거 실태는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거에 대한 안정성·쾌적성·안전성 등에서 두 부류 모두 주거 비용에 대한 부담감을 호소했다. 더구나 비혼 1인 여성은 혼자 사는 여성으로 느끼는 차별과 불편한 시선 또한 토로했다. 안전성에서도 노출의 우려, 범죄 대상으로 표적화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황정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등 연구진은 “주거 비용에 대한 지원, 단순히 가구원 수에 의한 주거 면적 기준이 아니라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고려한 섬세한 기준 마련, 범죄의 표적이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해소될 수 있는 주거환경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혼 1인 가구가 정책 대상에 포괄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하고, “사회경제적 자원이 부족한 여성 가구주 가구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더 많은 임대주택을 제공하며, 대안적 주거지원 형태로서의 코하우징에 대한 검토로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한국여성민우회는 신주거빈곤층의 목소리와 바람을 사회적으로 알리기 위해 오는 11월 4일 ‘세입자 말하기 대회: 내가 사는 그 집’을 개최한다. 이 행사에서는 세입자의 주거권을 높이는 데 실용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세입자 주거권 안내서’도 배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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