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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한해동안 ‘매맞는 여성’은 얼마나 될까. 한국형사

정책연구원이 92년 서울지역의 1천2백여명의 주부를 대상으로 조사

한 결과에 따르면 28.4%가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이 가운데‘피난처’가 필요할 정도로 심한 폭력을 당한 경우는

10.6%. 열명중에 한명의 여성이 피난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매맞고 갈 곳없는 여성들에게‘안식’을 제공하고 있는 피

난처는 얼마나 될까. 민간기관과 정부기관을 통들어 13군데에 불과

하다. 민간기관으로는 한국여성의 전화 ‘여성의 쉼터’와 부산여성

의 전화 ‘쉼터’, 카톨릭 재단의 ‘쉼터’를 비롯해 6곳, 정부기관

으로는 서울의 자매복지관을 비롯한 7개의 쉼터가 운영되고 있다.

이들 쉼터에는 96년 한해동안 1천6백여명의 여성과 아이들이 거주했

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는 한국여성의 전화가 운영하고 있는‘여

성의 쉼터’이다. 87년 3월 방 3개의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사무실

내 두평짜리 방 하나에서 출발한 ‘쉼터’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

다. 쉼터는 회원들의 회비와 수익사업 그리고 물품보조 등을 통해

운영돼 왔으며 현재는 전세로 방 4개짜리의 단독주택에 자리하고 있

다.

창립 10주년을 맞아 이제까지의 활동을 총결산하고 새로운 전환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로 10년동안 쉼터와 인연을 맺어온 세명의 연구자

들이 최근 〈여성운동과 사회복지-학대받는 여성의 쉼터연구〉(나남

출판 펴냄)를 출간했다. 김인숙 카톨릭대 사회복지학 교수, 김혜선

한국여성의 전화 상담국장(한양대 사회복지학과 강사), 신은주 평택

대 사회복지학 교수가 공동저자이다.

김혜선씨는 연구를 마치고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이번 연구를

통해 새삼 아내구타 문제의 심각성과 이들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었다. 쉼터를 이용하고자 하는 여성들은 많지만 마음놓

고 이용할 수 있는 쉼터는 여전히 부족한 현실이다. 보호받아야 할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사회복지서비스는 너무 열악하다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이 연구를 통해 쉼터에 대한 지원이 대

폭 확대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연구진은 우리나라 13개 쉼터중 9개소를 직접 방문해 구타당한 여

성들과 쉼터의 스탭, 원장 등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璿像만?

쉼터의 구조와 기능, 형태, 스탭 구성, 보호 대상, 사회복지 서비스와

각종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실태를 파악해 이를 근거로 바람직한 대

안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들은 또 한국여성의 전화

‘학대받는 여성과 쉼터, 그 현황과 대안’이라는 주제로 10월 24일

기독교연합회관에서 개최한 심포지움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연구진들이 지적한 우리나라 쉼터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

제들은 대략 다섯가지이다. 단지 숙식만을 제공하는 수용시설적 특

성이 강하다, 전문성이 떨어진다, 재정적으로 빈곤하다, 여권주의 인

식수준이 낮다, 그리고 민간단체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주요한 문제점으로 꼽혔다.

민간단체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연구자들은 “정

부가 운영하는 쉼터의 경우 규모나 재정이 민간 쉼터보다 상대적으

로 크지만 구타당하는 여성문제에 대한 사회적 의식향상 문제나 변

화를 추구하는 면에서는 민간쉼터의 기여도가 훨씬 큰 것으로 평가

됐다. 그러나 의식향상을 통한 사회적 변화에는 많이 기여하지만 현

실적인 장애를 제거할 수 있는 지원이 수반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민

간쉼터의 한계가 역력했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쉼터엔 민 관

상호지원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것”을 중점 지적했다.

쉼터는 어떠한 방향으로 개선돼야 하는가에 대해 연구진들은 여섯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쉼터는 모든 학대당하는 여성과 자녀에게 개

방되어야 한다, 학대당한 여성과 자녀는 그 인권이 존중되어야 하며

개별적 특성에 맞는 지원을 받아야 한다, 쉼터에 거주하는 여성과

자녀에 대한 정부의 행정적·재정적 지원이 이뤄져야 하며 동시에

쉼터 운영에 대해 자체적 자율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쉼터서비스의

통합적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지역사회와의 연계 속에서 활동해야

한다, 여성운동의 맥락을 유지하면서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최윤 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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