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jpg

2000년을 열며 김대중 대통령은 여성들에게 뜻밖의 선물을 내놓았

다. 새정부 출범당시 현 정부조직 특성상 곤란하다는 이유로 파기시

켰던 여성부 신설공약을 갑작스레 1월 3일 신년사를 통해 전격 발

표한 것이다. 김대통령은 이날 “여성특위를 여성부로 바꿔 정부 각

부처에 분산되어 있는 여성업무를 일괄해서 관리 집행하도록 함으로

써 21세기에 그 역할이 크게 증대된 여성의 시대에 대비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여성관련부처 대수술 불가피

김 대통령의 이같은 발표에 여성계는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환영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지만 일부에서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뤄진

것이라 당황하는 표정도 없진 않았다. “그렇게 필요하다며 요구할

때는 온갖 이유를 들며 불가능하다고 하더니 어떻게 이런식으로 신

설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하는 이들도 있었고, “총선을

지나치게 의식한 선심정책 아니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있었는가 하

면, “지금 우리의 여성정책 수준을 볼 때 여성부가 반드시 필요하

냐”는 회의론마저 일었다. 하지만 대체로 “강력한 관리집행기능

을 갖는 여성정책전담부서는 적극 환영할 만한 일이며 이제 과제는

제대로 만드는 것”이라는데 의견이 모아지는 모습이었다.

여성부가 선거용이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여성부가 신설되면 확실히

지금보다는 더 낫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무엇보다 큰 것이다.

하지만 여성부 신설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어서 앞으로 넘어

야 할 산은 많아 보인다.

‘부’에 걸맞는 예산과 집행능력을 갖추기 위해선 전부처에 흩어져

있는 여성부서들의 대수술도 불가피하고, 이 과정에서 효율성을 최

대한 염두에 두면서 우리 현실에 맞는 가장 적합한 기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작업은 현재로선 우리실정에 맞는 여

성부 모델에 대해 충분한 논의조차 안돼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더욱

가야할 길이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여성특위·여성관련 부처 신년사로 여성부 신설 알게돼

김대통령의 여성부 신설 발표는 정부관계부처와도 전혀 상의 없이

단독으로 추진된 것이었는데, 대통령직속 여성특위나 정부 여성관련

부처에선 신년사를 통해 여성부 신설 사실을 알게 됐고, 청와대측에

서도 특별한 구도를 가지고 발표한 것은 아니라고 시인했다. 그렇

다면 모델로 삼을만한 외국 사례가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외

국의 여성부서연구와 관련해 가장 최신작인 김엘림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원의 보고서(99년 8월)에 따르면 여성정책기구가 여성부로 있는

국가는 대략 뉴질랜드, 캄보디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정도

이지만 우리의 모델로 삼기에는 모두 적절하지 못하다. 이들 국가의

경우 여성부가 여성아동부, 여성퇴역군인부, 여성사회복지부, 여성특

수교육부 등의 명칭으로 복합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 협의조정 기능이어서 관리 집행부서의 형태는 아니기 때문이

다. 결국 우리나라는 완전히 새로운 모델을 자체적으로 만들어야 하

는 것이다.

뉴질랜드·캄보디아·네팔 여성부

우리나라 모델로는 무리

그렇다면 어떻게 만들 것인가. 여기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고, 또 그만큼 논란도 있을 수밖에 없다. 각부처에 분산되어

있는 여성업무를 어떤 기준으로 떼어 올 것인가. 그리고 어느 정도

떼와야 가장 적절하다고 할 수 있는가. 여성부가 여성업무를 완전히

전담해서 집행하면 타부처들은 여성관련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

게 되지 않을까. 순수 여성부서는 아니지만 여성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타부처와의 협의 조정이 지금보다 과연 더 수월할 수 있겠는

가. 이런 문제는 그동안 여성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

의 이들이 제기한 몇가지 논리에 포함되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앞으로 여성부 신설과 관련해 가장 고려해야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강력한 집행부서 밑그림이 필요하다

또 이런 차원에서 더 논의될 수 있는 것이 강력한 협의조정기능으

로 가느냐, 아니면 그래도 어떤 형태로든 집행기능을 선택하는것이

더 바람직하느냐 하는 부분이다. 강력한 협의조정기능이 더 효율적

이라고 보는 입장은 기본적으로 여성업무의 특성상 타부처를 원활히

관리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현재 6개부처에 두고 있는 여성정책담당관실을 전부처로 확대하고

여성부는 이를 총괄 조정하면서 대신 일부 부처에서 원활히 소화를

못하고 있는 여성업무를 끌어오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 하지

만 강력한 집행기능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는 의견이 현재로선 더

우세하다. 전 부처로 여성정책담당관실이 확대되는 것은 별도로 추

진돼야 할 정책사안이고, 정부 부처의 여성관련 업무를 적절하게 분

리시켜 여성부로 통합시키는 새로운 방안은 이제부터라도 연구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다만 이가운데 최대 관건은 부처간 협의인데, 부처

간 갈등을 어느정도 줄일 수 있느냐가 여성부 출범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와 민간 여성 NGO들도 이런 문제들을

감안해 최선의 밑그림 작업을 시작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여성특

위는 “강력한 관리집행에 걸맞는 속을 채우겠다”며 “빠르면 2월

내 대략적인 시안은 완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한

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단체협의회도 자체안을 검토중이다.

'최진숙 기자 Jinschoi@womennews.co.kr'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