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프랜시스 버턴 역자 김하경/시대의창/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 역자 김하경/시대의창/

고대 아라비아에 어질고 지혜로운 왕이 있었다. 왕은 젊고 수려한 외모를 가진, 뭐 하나 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매일 새 왕비를 맞이하고 이튿날 죽여버리는 잔인한 사람이기도 했다. 왕이 그렇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왕비의 불륜 행각을 목격하고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왕비를 죽인 왕은 트라우마에 사로잡혔고, 어떤 여인도 믿지 못해 하룻밤을 같이 보낸 왕비를 아침마다 죽였다. 왕의 이름은 샤리아르. 

왕을 불쌍히 여긴 한 여인이 있었다. 대신의 딸이었던 여인은 자신의 재능으로 왕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고 왕비가 되기를 자청한다. 첫날 밤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여인은 이튿날 아침 죽지 않았다. 그렇게 갖가지 이야기를 샤르아르왕에게 들려준 여인은 왕의 진정한 사랑을 받게 되고 마침내 왕비가 된다. 여인의 이름은 세헤라자드. 

천일야화, 흔히 아라비안나이트로 알고 있는 이야기의 큰 틀이다. 아라비안나이트는 6세기경부터 수집되기 시작해 15세기 이전에 현존하는 형태로 완성된 구전문학의 꽃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내용은 더 풍성해졌고, 재미는 개그콘서트를 능가하며, 깊이도 깊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흔히 아라비안나이트의 핵심으로 알고 있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신드바드의 모험’ ‘알라딘과 이상한 램프’ 등은 원본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들 이야기를 아라비안나이트에 포함시킨 것은 프랑스 사람 앙투안 갈랑이다. 그는 1703년 아라비안나이트를 불역판으로 출간하면서 이 이야기를 포함시켰다. 그래서 혹자는 이들 이야기를 ‘고아 이야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비록 원본에서 발견되지 않지만 이들 작품이 아라비안나이트에 수록된 작품이라고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만큼 아라비안나이트를 널리 알리는 데 이바지했기 때문이다. 

아라비안나이트를 모험과 도전에 관한 이야기로 오해하는 독자들도 있는데, 사랑 이야기도 충분히 많다. ‘고난 속에서 지켜낸 지조 있는 사랑’이라는 시는 연인에 대한 절절한 정을 고백하고, ‘신들이 맺어준 신비로운 사랑’이라는 짧은 글에서는 연인으로부터 버림받을까 노심초사하는 대목도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신비한 모험 속에서 피어난 사랑과 비극으로 끝난 슬픈 사랑 등 다양한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라비안나이트를 읽는 내내 가장 부러운 것은 세헤라자드의 끊이지 않는 스토리텔링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샤리아르왕의 정신적 질병을 치유했고, 다시 어질고 지혜로운 왕으로 돌아오게 했다. 이야기는 삶을 변화시키고 치유하는 힘이 있다. 아니, 세상을 바꾸는 것은 여인이던가. 문득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이야기를 듣던 그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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