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다. 추석에 하는 상투적인 덕담이라도 하고 싶지만, 이른 추석의 땡볕 아래 놓인 마음은 겨우 숨을 헐떡이는 생선 같다. 늦은 장마가 와도 입은 말라 어떤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렵다. 추석이라고 미담을 소개하자니 타인의 고통에 눈감고 모른 척해버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더욱 불편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추석에 어울리는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본래 추석은 햅쌀과 햇과일의 수확을 축하하고 감사하기 위한 날이다. 그래서 추석은 1년 중 가장 풍성하고 여유 있는 때다. 추수의 기쁨과 풍족함을 즐기고 나누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어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중추절), 미국(Thanksgiving Day), 러시아(성 드미트리 토요일), 독일(Erntedankfest), 베트남(쭝투)에도 추석과 비슷한 명절이 있다. 한가위를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 부르는 것도, ‘한가위만 같아라’는 표현이 있는 것도 추석이 풍요로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추석은 유달리 이르다. 아직 농작물이 영글지 않았다는 뉴스나 아직 더운 날씨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추석의 풍성함, 충족감, 기쁨, 여유로움을 느끼기에는 어딘가에 쫓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떨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로 약 300명이 사망했고, 실종자 10명은 아직도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 일어난 굵직한 사건만 보아도 군부대 내의 따돌림으로 사망한 윤 일병 사건과 일련의 군대 내 폭행·성추행·자살 사건들, 남부지방의 수해, 철도·지하철·화재 사고 등 2014년에는 유독 사건, 사고들이 줄을 이었다.

사람도 사회도 곤경에 처했을 때 그 밑바닥을 드러낸다. 세월호 사건의 구조와 사후 처리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무능함과 비겁함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비정규직인 선장이 승객들을 두고 도망치고, 유가족들이 특권층으로 비난받고, 소위 보수 성향의 인터넷 게시판에 세월호 참사 피해 여학생과 여교사 등을 소재로 음란성 글이 게시되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리 사회의 그림자다.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비난과 폭언, 피해의식은 경쟁과 상대평가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약자에게 잔혹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엄격한 상대평가와 생존경쟁 속에서 우리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필연적으로 낙오자일 수밖에 없다. 사회는 좋은 학교와 성적, 자격증, 외국어, 세련된 화술, 패션 감각, 날씬한 몸매, 예쁜 얼굴, 상냥한 미소, 경제력, 배우자, 자녀, 성적 매력 등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요구하고 비교하여 낙오시킨다. 산술적으로 매달 하위 10%씩을 낙오시키면, 7개월 후에는 절반 이상이 낙오한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비교당하고 상처받는다. 그리고 이렇게 생긴 상처와 분노는 그 원인이 아니라 자신보다 약하고 힘이 없어 보이는 것을 향하기 쉽다. 약자에게 화를 내고, 더 약자를 비난한다. 내가 결혼을 못 하는 것은 사치스럽고 돈만 밝히는 김치녀 때문이고 바람둥이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은 상간녀 때문이다. 하청업체에 가격을 후려치고, 하급자에게는 굴종을, 마트 판매원에게는 과도한 친절을 강요한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 처리 과정을 보면서 같은 종류의 비겁한 폭력과 무책임한 이기심을 보았다. 이런 사회에서 추석 때 가족친지들을 마주하는 것이 불편한 것은 당연하다. “언제 결혼하니?”와 “누구는 대기업에 입사했다던데…”는 강요와 비난으로 느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번 추석이 어색하고 불편한 것은 세월호 사건 등 일련의 비극들을 겪으며 우리가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지겹고 보고 싶지 않다는 비겁한 마음이 드는 것은, 우리가 ‘세계 최고’ ‘일류’ ‘국민소득 2만 불’ 등의 화려한 가면으로 애써 외면하던 우리 사회의 어두운 밑바닥을 보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그 추한 맨얼굴이 우리가 만든 것이라는 것을, 적어도 나치의 학살에 침묵했던 다수처럼 우리가 그 사회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경쟁과 낙오와 비난으로 가득 찬 외로운 사회로 다시 돌아갈 것인지,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갈지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추석을 맞아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린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 차마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엄마, 성폭력‧성매매 피해자, 아이들, 위안부 할머니, 병·가난과 싸우고 있는 사람, 대다수가 비정규직인 여성 근로자, 일을 하고 싶은 장애인, 결혼하고 싶은 동성애자, 결혼 이주여성,…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와 나에게, 힘들었지만 잘 살아왔다는 칭찬과, 정말 고마웠다는 감사와, 추석에는 잠시나마 평화롭기를 빈다는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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