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하고 3년, 행동계획과 자금마련 1년 14개월 만에 세 엄마와 여섯 아이들이 28일간의 유럽여행 대장정에 나섰다. 부엌살림을 여행가방에 쓸어담아 '유럽으로 엠티왔냐?'는 소리를 들으며 좌충우돌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성장한 유쾌한 여행기다. [편집자 주]

 

세 엄마와 여섯 아이가 여행 출발 전 인천공항에서 한 컷 남겼다. ⓒ여성신문
세 엄마와 여섯 아이가 여행 출발 전 인천공항에서 한 컷 남겼다. ⓒ여성신문

“헉 이 산이 아닌게벼….”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홀번역까지 가는 교통편을 그렇게 외웠건만 여기서 타는 게 아니란다. 열아홉 시간의 비행 끝에 영국에 도착했다며 들떠 있는 여섯 아이들의 눈망울을 쳐다보니 면이 안 선다. 떠나기 전 걱정했던 일들이 내리자마자 현실이 되어 내심 꿀꿀한데 아이들은 친구들은 지금 학교에서 수업하고 있을 거라며 낄낄거리며 마냥 즐겁단다. 남 공부할 때 노는 재미가 쏠쏠한가 보다.

이렇게 우리들의 유럽 배낭여행이 시작됐다. 작심 3년, 행동 계획 및 자금 마련방안 수립 1년4개월 그리고 비행기 표와 숙소 예약 6개월 만에 세 엄마와 여섯 아이들이 지난 7월 중순 28일간의 대장정에 나섰다. 영국에선 런던과 옥스퍼드, 독일에선 쾰른·본·보훔, 프랑스에선 파리와 베르사유, 스위스에선 루체른과 인터라켄, 이탈리아에서는 밀라노·베네치아·피렌체·피사·로마·폼페이·포지타노 등 5개국 16개 도시를 샅샅이 훑는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아이들에게 세계를 보여주자며 빠듯한 월급에 매월 50만원씩을 저축하며, 저비용 고효율 배낭여행을 위해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준비했다. 첫째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비행기 표, 숙소, 박물관 패스, 투어 등 사전 예약이 가능한 것들은 모두 조기에 예매한다. 둘째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보고 공감할 수 있도록 사전 학습을 철저히 시킨다. 셋째, 건강한 여행을 위해서는 매식보다는 직접 해 먹이는 방향으로 하지만, 현지의 대표 음식은 1회 이상 사 먹인다.

첫 번째는 완벽하게 완료했다. 심지어 비행기 표값 절약을 위해 과감하게 아이들을 하루 결석시키는 무모함마저 저질렀다. 현장체험 학습 5일에 하루 결석. 다른 엄마들은 특목고다 자사고다 하며 중3 여름방학에 보낼 학원을 알아보느라 정신없다는데 무지한 건지 무식한 건지 일단 저질렀다. 두 번째는 우리 아이들을 너무 믿었던 탓인지 아쉬움만 남긴 채 엄마들만의 학습으로 끝났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엄마표 여행 가이드북도 만들어 나눠줬건만 아쉽게도 여행가방의 무게만 늘리는 일이 됐다. 세 번째는 유럽으로 엠티 왔냐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한식 요리에 충실했다. 양상추에 부위를 알 수 없는 돼지고기 구이와 떡볶이, 미역국, 짜장밥, 짜빠구리, 김치찌개, 된장찌개, 주먹밥, 김밥, 고추잡채 등 우린 한식세계화추진단으로 빙의되어 전 유럽을 돌아다녔다.

어쨌든 친절한 할아버지 안내원의 도움으로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홀번역. 이미 여행 가이드북을 통해 엘리베이터도 에스컬레이터도 없는 역이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 있는 계단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가방 속에는 라면, 쌀, 밑반찬, 각종 통조림, 조미료(마늘, 고춧가루, 된장, 고추장, 간장, 참기름, 소금), 미니 밥솥, 냄비, 물통, 김, 볶은 김치, 3분 요리, 비상약, 일회용 그릇과 티스푼, 수저세트, 칼, 퐁퐁 등 도마를 빼고 부엌살림을 거의 다 쓸어 담아 왔기에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남편이 생각났다. 데려올걸….

아이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호텔에서 미니 전기밥솥에 밥을 해서 라면을 끓여 맛있게 저녁을 먹였다. 유스호스텔도 아닌 호텔에서 밥을 하고 라면을 끓이다니, 내 생전에는 절대로 못할 거라 생각했던 일들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해치웠다. 개인적으로는 18년 만에 다시 오는 런던이라 뭔가 남다른 감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감회는커녕 아이들 뒤치다꺼리하기가 바빴다.

사실 걱정이 많았다. 길은 제대로 찾아다닐 수 있을지, 아이들이 아프지나 않을지, 영어는 어떻게 잘 나올는지, 애들끼리는 잘 지낼지 등. 선글라스 대신 돋보기를 써야 하고 여기저기 쑤시지 않는 곳이 없는 나이에 접어든지라 아이들과 떠나는 유럽 배낭여행은 엄청난 모험이었다. 우리 아홉 명 중 가장 큰 짐은 아이들이 아닌 나라며 이러다 효도관광 되겠다고 옆에서 구시렁거리는 좀 덜 늙은 엄마들의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될까 내심 걱정스러웠지만 그런대로 오늘 하루는 잘 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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