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명 적고, 마지막 편지 쓰니 눈물 ‘뚝뚝’
수의 입고 관에 들어가니 빛 차단…아쉬움 몰려와

 

유언장 작성 시간,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적어내려갔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유언장 작성 시간,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적어내려갔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영정사진, 죽음을 준비하는 첫 단계

16일 오후 서울 개포동의 능인복지관에 위치한 임종체험 수련센터 ‘아름다운 삶’.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중년 여성이 의자에 앉히고 사진기를 들이댄다. “영정 사진 찍겠습니다. 하나 둘 셋.” 죽음 체험을 앞두고 영정 사진이 순식간에 완성됐다. 어색함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4년째 사진 촬영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강순희(56)씨는 “노홍철씨도 웃으면서 찍었다”며 “대부분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은데, 이왕이면 즐겁게 웃어보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 방송인 노홍철씨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임종 체험을 하면서 체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미리 죽음을 체험하고 삶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임종 체험은 시청자들의 가슴에 큰 울림을 남겼다. 이날 찾아간 ‘아름다운 삶’에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 30여 명이 있었다. 아름다운 삶 김기호(46) 대표는 마이크를 잡고 왜 오늘 이곳에 왔는지 먼저 물었다. ‘나 답게 살고 싶어서’ ‘취직 준비 중 마음을 다잡기 위해’ ‘다른 사람을 너무 신경 쓰면서 살고 있어서’ 등 다양한 이유가 쏟아졌다. 

서울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김 대표는 항공사에 근무하던 중 1999년 임사체험과 죽음명상을 연구, 2001년 본격적으로 임종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죽음은 가장 멋진 공부입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자주 점검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합니다. 저도 지난날 여행 한 번 못 가 보고 공부만 한 시간이 후회스러웠습니다.”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갔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갔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임종 체험의 첫 프로그램은 ‘내 인생 자서전 쓰기’다. 내 삶에 영향을 끼친 사람, 중요했던 순간 등 삶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한자 한자 적어 내려갔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부터 회사 동료까지 스쳐 지나갔다. 다음으로 김 대표는 ‘명상’을 제안했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나요’ ‘당신은 후회 없이 삶을 살았나요’ 등 다소 철학적인 주제에 대답을 쉽게 하지 못했다. 의외로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말, 유언장·묘비명 쓰기 

2시간가량 강의를 들은 후 정말 ‘떠나야 할’ 준비를 했다. “유언장과 묘비명, 부고(訃告) 일지를 적어보세요.” 

영정 사진 앞에 놓은 촛불을 바라보며 유언장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눈물을 훔치거나 흐느끼는 소리가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부모님이 떠올랐다. 갱년기에 아파하던 엄마를 뒤로한 채, 늘 놀러 다녔던 못난 딸, 일에 치여 힘들어하던 아빠의 어깨를 주물러주지 않은 매정한 딸. 늘 남을 챙기는 데만 급급하고, 정작 내 지지자인 ‘가족’은 뒷전이었던 기자의 삶이 후회스러웠다. 효도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떠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시신은 “화장을 해 좋아하는 산에 뿌려달라”고 썼고, 장례식은 “주변 사람들이 내게 편지를 읽어주는 식으로 진행해 달라”고 부탁했다. 

 

관 뚜겅을 덮고, 망치로 두들긴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관 뚜겅을 덮고, 망치로 두들긴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세상과 단절되는 시간…입관

영정 사진과 촛불을 들고 관에 앉았다. 세상과 단절되는 죽음의 순간이었다. 영정 사진 속 기자의 모습이 낯설었다. ‘내 얼굴이 이렇게 생겼었구나. 20여 년간 내 얼굴로 살아줘서 고마웠어. 여드름 난다고 얼굴 쥐어뜯은 것 미안해.’ 

장례지도사가 손과 발을 묶고난 뒤 관에 누웠다. 실제 장례에 쓰이는 관 뚜껑이 닫히고 망치 소리가 들렸다. 정적과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좁은 공간에 누우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답답하고, 삶의 미련이 몰려왔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한 것, 성과만을 바라보며 산 것, 지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못한 점이 떠올랐다. 정말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10여 분간의 어둠이 걷히고 관이 열렸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빛조차 반가웠다. 죽음을 체험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됐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음 날 기자는 정말 오랜만에 엄마와 영화를 보며 데이트를 했다. 임종 체험의 효과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 임종체험을 하려면? 

죽음을 미리 체험해보는 임종 체험은 서울 영등포동 효원힐링센터와 2002년부터 임종체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아름다운 삶’ 등에서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삶’의 임종 체험 비용은 4시간에 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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