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경제활동은 ‘4R’ 단계별 지원으로
취업(Recruit)·경력유지(Retain)·재취업(Restart)·대표성(Representation)

 

‘워킹맘 장관’. 지난 7월 16일 취임한 김희정(43·사진)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붙은 또 하나의 수식어다. 재선 의원인 김 장관은 지난 2004년 17대 최연소(33세) 국회의원이 됐다. 당선 이듬해 회사원인 권기석(48)씨와 결혼했고,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둘째를 임신한 몸으로 재선했다. 임기 중 결혼과 출산을 한 첫 국회의원이다. 지금도 매일 아침 7시30분이면 첫째 딸(6)과 세 살배기 아들을 여의도 국회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한다. 손자손녀를 둔 할머니 장관과 대학생 자녀를 키우는 엄마 장관은 있었지만,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미취학 자녀들을 키우는 ‘워킹맘 장관’은 그가 처음이다. 여가부의 대표 정책 수요자인 워킹맘이 직접 수장을 맡았다는 것이 정책 방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김희정 표’ 여성가족 정책은 없다

김 장관은 새롭게 추진하고 싶은 정책을 묻는 질문에 “새로운 정책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새 정책을 자꾸 만드는 것보다, 기존의 정책을 국민 눈높이에 맞춰 심화·발전시키겠다는 의미다. 이런 지론에는 그동안 여가부 정책들이 수요자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밑바탕에 있다. 

“여가부 정책 수혜 계층이 대부분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나 한부모 가정 등 밖으로 알리기 어려운 분들이 많아서 정책이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있어요. 이것은 우리의 숙명이죠. 하지만 부처 홍보자료를 보니 정책을 제대로 홍보하지 못한 경우도 상당히 많더군요. 대통령께서 ‘국민이 모르는 정책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씀했듯이 새로운 정책 발굴 이상으로 기존 정책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고, 정책 수요자를 찾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정책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많은 국민이 알고, 이용할 수 있도록 국민 눈높이에 맞춘 정책 홍보부터 시작하겠다는 의미다. 새 정책을 만들기보단 기존 정책을 ‘꿰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 실제로 최근에 ‘청소년 체험캠프에 대한 합동 점검’에 대한 소식을 알리는 보도자료가 김 장관의 지시로 안전성이 확인된 캠프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알리는 정보성 자료로 성격이 바뀌었다. 

나 같은 워킹맘 더 이상 없도록

그가 여가부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자양분은 두 자녀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경험이다. 어린이집 대기 순번이 길어 몇 개월을 기다리고,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친정·시집 식구들을 동원해야 하는 워킹맘의 고충을 김 장관도 뼈저리게 체감했다. 

“세종로 정부청사로 출근하게 됐지만 아이들은 계속 국회 어린이집에 맡기고 있어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로 출근하는 일도 잦아 저 대신 친정아버지께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세요. 다행히 저는 직장 어린이집이 7시쯤이면 문을 열어 걱정이 덜하지만, 일반 어린이집은 더 늦게 문을 여는 경우가 많아요. 이 때문에 직장 어린이집 확대가 필요하죠.”

사실 김 장관은 출산휴가, 육아휴직은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다. 공직자라는 위치 때문에 산후조리도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한국인터넷진흥원장 시절에는 출산 후 7일 만에 출근했다. 18대 국회 개원과 출산이 겹쳐 둘째를 낳은 지 일주일 만에 국회로 출근해야 했다. 

“저 같은 워킹맘이 없도록 해야죠. 여성들이 중간에 직장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육아휴직을 활용하고, 직장어린이집을 확대해가야죠. 여가부는 여성들이 지금 당장 힘들지 않게 돕고, 곁에서 덜 고통스럽게 견딜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해나가겠습니다.”

 

‘정책 길목’ 3곳에서 제도 홍보 추진

일과 가정을 병행하면서 공직자나 장관이 아닌 엄마의 눈으로 들여다본 정책에는 사각지대도 많았다.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청사 17층에 있는 이름뿐인 수유실을 새롭게 정비하기로 한 것도 “워킹맘이기에 가능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일·가정 양립 정책 홍보에도 그대로 녹여낼 계획이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는 부모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 3곳에서 적극적으로 제도를 알리고, 이를 통해 개선해 가겠다는 것이다. 

“첫아이를 임신했을 땐 분유 회사 등에서 운영하는 임신부 교실을 10곳 넘게 찾아다녔어요. 예비 엄마라면 한두 번은 꼭 참석하는 그곳에 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나 건강가정진흥원에서 강사를 보내 출산·육아휴직, 아이돌보미 등 관련 정책을 알리고, 부모교육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다른 길목은 자녀 출생신고를 할 때 여가부 제도 활용에 대해 알리는 것, 세 번째가 부모들에게 지급하는 아기수첩이에요. 여기에 제도에 대한 정보를 실을 예정입니다.”

수요자가 필요한 정보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이들이 자주 찾는 길목을 잡아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김 장관이 심화·발전시키겠다는 정책에는 여성인력 활용 정책이 큰 줄기를 차지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임명장을 주며 “워킹맘이니 누구보다 일·가정 양립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더 신경 써 달라”고 당부했단다.

정책 큰 틀에서 단계별 전략 나와야

“지금까지의 정책은 여성들이 처음 취업(Recruit)을 하는 데 집중했어요. 그 결과 처음 직장에 진입하는 비율은 눈에 띄게 늘었죠. 여성 대표성(Representation)도 아직 소수이지만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하지만 경력을 유지(Retain)하고, 경력단절 후 재취업(Restart)하는 것은 아직도 지원이 미흡해요. 이제 여성들이 일을 꾸준히 해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단계별로 지원할 계획입니다.” 

하나의 정책이 아닌 큰 흐름 안에서 정책의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적절히 활용할 계획도 세웠다. 김 장관은 남성 육아휴직을 활성화하기 위해 도입된 ‘아빠의 달’ 등 현재 인센티브(incentive) 성으로 추진 중인 제도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출산휴가 후 바로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자동육아휴직제’로 전환하는 등 보다 강력한 제도로 바꾸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여가부 단독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은 거의 없다. 여성과 가족 정책은 거의 모든 정부부처와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협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열악한 인력과 예산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다른 부처를 움직이는 데는 아직 어려움이 많다. 현재 여가부 직원은 241명으로 중앙부처 공무원의 2.1%이며, 예산은 정부 예산의 0.16%(5800억원)에 불과하다. 김 장관은 이러한 단점을 아예 드러내 ‘작지만 강한 부처’라는 목표를 세웠다. 

‘여성가족친화부처’ 순위 공개 추진

또한 범정부 차원의 융합정책 개발을 주도하고, 융합 행정을 통해 업무 효율성과 국민 만족도를 높이겠다는 의지도 나타냈다.

“지난 국무회의에서는 정부위원회 여성 참여율에 대해 구두로 보고했어요. 일부러 여성 참여율이 높은 부처를 언급했지요. 앞으로는 여가부가 운영하는 부처 평가지표를 종합해 발표할 계획입니다. 성인지예산제 잘하는 부처, 성폭력·가정폭력 예방교육 잘 실시하는 부처, 산하기관에 직장어린이집 운영하는 부처 등을 종합 평가해 여성가족친화 부처 순위를 공개하면 부처 간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 장관은 ‘안티(반대 세력)’가 많은 여가부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뺏어간다’는 인식을 바꾸고 정책 공감대를 넓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여가부 장관이 된 후 지인들에게 ‘안티가 많이 늘겠다’는 걱정 반, 농담 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여가부에 대한 안티는 여성들이 자신의 것을 빼앗아 간다는 이미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핵심 노동인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여성의 경제 참여는 필수예요. 그렇기 때문에 국가 발전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들이 뺏는 것이 아니라 협업을 한다는 것으로 인식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위기의 길에서 만난 배 되겠다”

박근혜 정부 2기 내각에서 유일한 여성 국무위원인 김 장관은 여성 대표성 확대에 대해서도 흐름에 따라 확대될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김 장관은 여성 할당제에 대해서는 “기존 임원 안에 남성 대신 여성을 넣는 소위 ‘나눠먹기’와 기존의 범위에서 확장한 ‘플러스 알파’ 방식이 있다”면서 “현재 기존의 인력을 빼내는 것이 아니라는 공감대부터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연소’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여성 리더로서 후배 여성들에게 “작은 실패에 좌절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무턱대고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의지를 가지는 것이 중요해요. 의지가 있어야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부족한 부분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으니까요. 의지가 있어야 실패를 하거나 당장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다음을 생각할 수 있어요. 폭이 넓은 계단은 높이도 높다고 합니다. 진득하게 기다리고 준비하다보면 언젠가는 올라갈 수 있어요. 가벼운 지푸라기 하나가 낙타의 등뼈를 부러뜨릴 수 있다고 하잖아요.”

김 장관은 취임식에서 “여가부가 ‘절도봉주’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끊어진 나룻길에서 만나는 배’라는 뜻의 이 사자성어로 “기회가 필요한 국민이라면 누구나 여성가족부를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패자부활전의 무대를 열어가겠다”는 장관의 의지가 담겨 있다.

‘위기’를 맞은 국민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부처. 소외받고 취약한 계층을 지원하는 여가부의 본래 취지에 적합한 말이다. 김 장관의 여가부가 위기를 넘기는 반가운 배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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