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풋풋한 첫사랑을 고백하던 순간일 수도 있고, 소싯적 실수를 사과하는 순간일 수도 있고, 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는 고통을 꺼내는 순간일 수도 있다. 여기 처음으로 힘겹게 입을 연 사람들이 있다.

2014년 6월 25일 기지촌 위안부들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하여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기지촌 위안부는 1957년부터 대한민국 내 각 지역에 소재한 기지촌 36곳에서 미군 상대 성매매에 이용됐던 여성들로, ‘위안부’ ‘미군 위안부’ ‘기지촌 위안부’ ‘기지촌 여성’ ‘양색시’ ‘양갈보’ ‘양부인’ ‘특수업태부’ 등으로 지칭됐다. 원고들의 주장은 대한민국이 경찰 등 그 소속 공무원들로 하여금 기지촌을 조성하고 관리하게 해 성매매를 조장함으로써 원고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국가는 신체의 자유, 모성보호, 건강권, 보건권 등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1961년 11월 9일부터는 구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2004년 9월 23일부터는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을 각 시행함으로써 현재까지 줄곧 법률로써 성매매를 금지해 왔다. 인신매매협약,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도 헌법에 의해 체결·공포된 조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오히려 이른바 ‘적선지구’라 하는 ‘특정 윤락지역’을 지정해 성매매 단속을 면제하고, 전염병예방법 및 식품위생법, 기지촌정화위원회, 기지촌 정화운동, 기지촌 환경개선사업 등의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기지촌을 지속적으로 유지·관리했다.

가장 대표적인 수단은 강제적인 성병 검진과 치료였다. 성병 감염 위안부에 대한 단속과 검거는 이른바 ‘토벌’과 ‘컨택’을 통해 이뤄졌다. ‘토벌’은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미군·한국 경찰·보건소 등의 합동 단속을, ‘컨택’은 성병에 걸린 미군이 상대방으로 지목한 여성을 찾는 접촉자 추적조사(Contact tracing)를 말한다. ‘토벌’과 ‘컨택’으로 지목된 여성은 낙검자수용소로 보내졌다. 여성들은 실질적으로 감금에 해당하는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페니실린 쇼크로 인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여성들이 페니실린의 과다 투여나 알레르기로 인해 사망하는 사고까지 발생했음에도 대한민국은 페니실린 사용을 지속적으로 독려(사실상 강제)했다.

또 대한민국은 소위 ‘애국교육’을 통해 기지촌 성매매를 권유·조장하기도 했다. ‘애국교육’이란 정부기관과 미군이 정기적으로(주로 월1회) 위안부들에게 실시한 교육이다. 이 교육에서 군수나 군청 관계 공무원, 관광협회장은 위안부들을 애국자라고 칭송하고 격려하면서 취업보장, 노후보장, 전용 아파트 건립 등 혜택을 약속하는 한편, 주한 미군의 성병 감염 예방을 위해 위안부들에게 성병 검진과 항생제 투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 외에도 대한민국은 미군에 의한 기지촌 범죄와 성매매알선업자(포주)의 범죄를 묵인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누구나에게 힘들다. 특히 국가처럼 권위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집단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하지만 성숙한 사회로 가기 위한 첫걸음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된다.(독일과 일본을 보라.) 이제 우리도 힘들고 부끄럽지만 입을 열어 우리 사회가 약자에게 위험과 책임과 비난을 전가하는 사회가 아님을 스스로에게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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