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비디오아티스트 겸 치과의사 크리스티네 베른트

 

비디오아티스트 치과의사 크리스티네 베른트씨가 지난 6월 22일 독일 베를린의 프리드리리히샤인 공원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여성신문
비디오아티스트 치과의사 크리스티네 베른트씨가 지난 6월 22일 독일 베를린의 프리드리리히샤인 공원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여성신문

“저는 취미로 예술하는 거 아닙니다.”

독일 베를린에 사는 크리스티네 베른트(53·사진)씨는 주 2~3일은 치과의사로, 나머지 2~3일은 예술가로서 일한다. 독일 통일 전인 1985년 동독에서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 일을 시작한 그는 서른 살 되던 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이후 독일은 사회·문화·경제적으로 큰 혼란기를 맞이했다. 베른트씨에게도 변화는 찾아왔다. 동독 체제에서는 개인 병원을 개업할 수 없었지만, 통일 후에는 달랐다. 1990년 대출을 받아 개인 병원을 차린 베른트씨는 7년 만에 대출금을 다 갚고, 하고 싶던 예술을 하기 위해 베를린 바이센제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2003년 학위를 받은 베른트씨는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베를린 칼스홀스트에 있는 개인 병원에는 주 2~3일만 출근하고 있다. 시간제 일자리로 일하는 병원장 베른트씨를 베를린의 프리드리히샤인 공원에서 만났다. 

그는 시간제 일자리로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돈 걱정 없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작품을 만드는 데 취재부터 후반 작업까지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 걸려요. 많은 예술가들이 돈 때문에 ‘팔리는 예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제가 진짜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어 좋아요.” 

베른트씨가 치과의사로 하루에 일하는 시간은 9시간이다. 주당 적게는 18시간에서 많게는 27시간을 일한다. 예약 환자가 많으면 주 3일을, 없으면 주 2일을 정해놓고 일한다. 일하는 시간 내내 환자만 보는 건 아니다. 다른 개인 병원 의사들이 그렇듯 은행 관리부터 세금 업무 모두 베른트씨가 도맡아 한다. 환자가 많으면 문서 작업은 집에 와서 하기도 한다.   

“두 가지 다 프로 의식을 가지고 활동하는 거예요. 시간을 정확하게 정해놓고 일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시간제 일자리라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두 일 모두를 사랑하기 때문에 시간을 쪼개서 일하는 것뿐이에요. 많은 시간제 일자리 근로자들이 돈보다는 자신의 삶을 택하듯 저 또한 그런 맥락이죠. 사람들은 제가 일주일에 2~3일만 치과에서 일하고, 다른 날은 노는 걸로 인식하는데, 예술은 환자 보는 것보다 더한 정신적 노동 강도를 요하기도 해요. 두 가지 일을 하는 바람에 쉴 틈은 많지 않지만, 제가 선택한 일이니 즐겁게 해야죠.”

두 가지 일을 놓치지 않고 해낼 수 있는 건 주변 환경 덕도 있다. 베른트씨는 예술가에게 기회를 주고, 그들을 지지해주는 베를린의 도시 분위기도 자신이 두 가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비디오아티스트 치과의사 크리스티네 베른트씨가 지난 6월 22일 독일 베를린의 프리드리히샤인 공원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여성신문
비디오아티스트 치과의사 크리스티네 베른트씨가 지난 6월 22일 독일 베를린의 프리드리히샤인 공원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여성신문

“베를린에는 다양한 종류의 예술이 공존해요. 예술가들이 커뮤니티를 이루며 살아가는 곳도 많고요. 예술적으로 상당히 열린 공간이고,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 예술인들이 모여들고 있어요. 예술가인 의사를 위해 기꺼이 수술 날짜를 월요일이나 목요일에 맞춰주는 환자들도 예술가에 대해 배려해주는 베를린 시민들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웃음)”

정해진 날짜에만 병원에 출근하지만 환자들의 불평은 없다. 개인 병원이라 대부분 예약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환자들은 ‘돈을 밝히지 않는 의사’라고 여기며 단골이 된다.

“치과를 운영하면서 예술가로 활동하는, 저 같은 사례는 드물지만 독일은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시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기 때문에 잘 활용하면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훌륭한 제도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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