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여주인공, 여전히 남성에 비해 사회·경제적 낮은 위치
외모·학벌 갖춘 전문직 엄친아와 지방대·비정규직 평범녀의 사랑 그려

 

사진=각 방송사 홈페이지.
사진=각 방송사 홈페이지.

최근 인기리 방영 중인 로맨틱코미디 드라마에는 공통적으로 신데렐라 구도가 등장한다. 백마 탄 왕자님과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이 신분상승을 달성하는 비현실적 스토리는 과거나 현재나 변함없이 반복되고 있다. 현실에선 고학력 전문직 여성들이 증가하고, 사회 진출이 활발해졌지만 드라마 속 여성은 여전히 남성에 비해 사회적·경제적으로 낮은 계층에 위치해 있다. 시청자들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이러한 극적 요소에 반응하면서도 반복되는 진부한 설정에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tvN 금토드라마 ‘연애 말고 결혼’은 신데렐라 구도를 답습한다. 드라마는 노골적으로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인물의 좌충우돌 로맨스를 그린다. 남주인공 공기태(연우진)는 명문대 의대 출신의 잘나가는 성형외과 전문의다. 교육자 집안의 삼대독자 종손으로 강남의 주상복합에 거주하는 소위 ‘명품 신랑감’의 조건을 갖췄다. 반면 여주인공 주장미(한그루)는 나이 서른을 앞둔 지방대 출신의 백화점 명품매장 판매원이다. 호프집을 하는 부모님과 강북의 낡은 주택에 살고 있다. 공기태는 결혼하지 않기 위해 집안에서 절대 허락할 것 같지 않은 주장미를 애인으로 거짓 소개한다는 설정이다.

tvN 월화드라마 ‘고교처세왕’에 나오는 주인공 정수영(이하나)은 대기업 계약직 사원이다. 얌전하게 집안일 돕다 시집이나 가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서울로 상경하지만 불투명한 미래에 쥐꼬리 월급으로 연명하는 도시 생활은 위태롭기만 하다. 하지만 그는 같은 회사의 두 본부장 이민석(서인국)과 유진우(이수혁)의 구애를 받으며 인생의 반전을 맞는다. 잘난 두 남자가 평범한 한 여자를 두고 벌이는 대립관계는 로맨스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배우 장나라와 장혁의 12년 만의 재회로 화제를 모은 MBC 수목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도 전형적인 신데렐라물이다. 장나라는 드라마에서 섬마을 출신의 로펌 계약직 서무인 김미영으로 분했다. 뿔테안경에 촌스러운 패션을 고수하며 아홉수(29세)가 되도록 남자 한 번 못 사귄 ‘모태솔로’다. 장혁은 외모와 재력을 겸비한 재벌3세 이건 역을 맡았다. 30대에 단명하는 집안 내력 때문에 후세를 이어야 하는 사명을 지닌 남자가 하룻밤 실수로 혼전 임신하게 된 여자와 진정한 사랑에 이르게 된다는 뻔한 스토리다. 

각 드라마는 이 같은 진부한 설정에도 배우들의 맛깔나는 연기와 탄탄한 구성 등으로 호평을 받으며 순항 중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남녀 간의 서열적 관계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설정이라는 일부 여성 시청자들의 지적도 있다. 

드라마를 즐겨본다는 조영미(47) 씨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랑과 남녀의 조건이 있는데, 드라마 속 러브스토리는 남자가 여자를 구원하는 신데렐라 구도로 획일화되는 것 같아 아쉽다”며 “인물 관계와 내용 설정을 다양화하는 상상력과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로맨틱 코미디물에서 신데렐라 코드의 답습을 지적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로맨틱코미디에서 가장 많이 쓰는 방식이 신데렐라 코드다. 그러나 예전처럼 여주인공이 남성에 의해 일방적으로 선택당하는 존재로 그려지지는 않는다”라며 “실질적 멜로 구도를 보면 남녀 주인공은 태생적 격차는 있지만 비슷한 눈높이에서 밀고 당기는 대등한 관계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이윤소 활동가는 “드라마 속 신데렐라 구도는 과거부터 존재해 왔다. 남성은 생계부양자고 여성은 가사분담자라는 성역할 고정관념과 더불어 극적 요소를 위해 이런 구도가 반복되는 것 같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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