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권재판소, 부르카 금지법
“부르카 금지는 유럽인권조약 위반” 제소에 패소 판결
“여성 인권 위해 필요” vs “무슬림 겨냥한 이중 잣대”

 

2013년 9월 16일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던 원고의 모습.
출처 : BBC 뉴스화면 캡쳐
2013년 9월 16일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던 원고의 모습. 출처 : BBC 뉴스화면 캡쳐

인권 침해인가, 표현과 종교의 자유인가.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베일의 착용을 제한하는 ‘부르카 금지법’이 유럽 사회에서 다시 한번 뜨거운 논란을 빚고 있다.

유럽인권재판소(ECHR)는 지난 1일 프랑스의 ‘부르카 금지법’이 정당하다며 프랑스 정부의 편을 들었다. 재판소는 1일 “프랑스의 부르카 금지법은 의복의 종교적 의미가 아니라 단지 얼굴을 가린다는 점만을 문제 삼은 것이기에 사고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프랑스는 2011년 공공장소에서 헬멧 외에 얼굴 전체를 가리는 복장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이를 위반하면 최대 150유로(약 21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법률 자체에 종교적 언급은 없지만 ‘니캅’(눈만 내놓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베일)이나 ‘부르카’(몸 전체를 가리고 눈 부위도 망사로 처리한 베일) 등 이슬람 여성들의 전통 복장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논란이 일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로 500만~600만 명이 살고 있으며 약 2000명의 여성들이 얼굴 전체를 덮는 베일을 착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이름을 SAS라고만 밝힌 파키스탄 출신의 프랑스 여성은 이 법이 유럽인권조약을 위반했다며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했다. 그는 “누구도 내게 베일을 강요하지 않았고 종교적 신념에 따라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소는 그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2013년 11월 27일에 열렸던 유럽인권재판소의 심리 현장 모습.
출처 : 유럽인권재판소 웹캐스트 www.echr.coe.int
2013년 11월 27일에 열렸던 유럽인권재판소의 심리 현장 모습. 출처 : 유럽인권재판소 웹캐스트 www.echr.coe.int

이번 판결에 대한 반응은 여성계 내부나 인권단체 내에서도 엇갈리고 있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설립한 여성단체 국제여성인권연맹(ILWR)의 아니 수지에르 회장은 이번 판결에 대해 “세속주의와 여성인권의 승리”라며 환영했다. 수지에르 회장은 “부르카 금지가 여성들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며 이 법을 지지하는 서한을 유럽인권재판소에 보내기도 했다.

반면에 이 법이 서구 중심적 발상으로 무슬림을 겨냥하며 표현과 종교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반론도 있다. 여성 뉴스 사이트 ‘위민스이뉴스’는 “나체로 경주를 하거나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 일부 누드 비치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어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여성들에게 우려를 표하는 프랑스 정부의 태도는 편향적이며 노골적인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앰네스티도 재판소의 판결에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국제앰네스티는 보도자료를 통해 “부르카 금지법으로 인해 표현과 종교의 자유가 침해당했으며 여성들은 공공장소에서 종교적 신념을 표현할 자유를 빼앗겼다”고 지적했다. 유럽·중앙아시아 프로그램 디렉터인 존 달루이센은 “치안과 양성평등에 대한 재판소의 인식은 피상적”이라며 “베일을 쓰는 것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은 표현과 종교의 자유를 제한할 근거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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