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성폭력·가정폭력·불량식품 등 일명 4대악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는 보험인 현대해상의 ‘행복지킴이 상해보험’이 7월 1일 출시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생활보호 대상자, 차상위계층, 다문화가정의 자녀 등 19세 미만의 취약계층이 이 보험의 우선가입 대상인데, 개인 가입이 아닌 지방자치단체 또는 학교 등의 단체 가입만 가능하며 4대악으로 인한 피해 시 치료비와 더불어 특약에 따라 정신적 피해를 최대 100만원까지 보상한다고 한다. 여성단체들은 올 초부터 이 보험의 출시를 반대해왔다. 

4대악 척결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과제다. 온 국민의 관심을 끌 만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만 사회적 관심이 반짝했던 여성폭력 문제를 정부가 4대악으로 명명하여 척결을 약속하고 민간 보험회사가 그 피해로 인한 보상까지 받을 수 있도록 보험을 출시한 마당에 여성폭력 근절을 줄곧 주장해온 이 보험에 대해 여성계는 반대하고 있다.

반대의 근거는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등 여성폭력을 해석하는 철학적 기반에서 비롯된다. 여성운동은 지난 반세기 여성폭력이 정치적 문제이며 그 시정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점을 주장해 왔는데, 폭력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고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국가적 책무는 이제 유엔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확립된 원칙이 됐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로 시행 20년을 맞는 성폭력특별법이 그 증거다. 당시 성폭력특별법은 가해자 처벌과 함께 피해자 보호와 지원조치를 담아 성폭력 범죄행위를 가능하도록 용인해 온 사회적 책임을 인정하고 이를 시정할 국가 의무를 공적으로 선언했다.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가 말한 바와 같이 범죄 책임은 가해자 개인에게 있지만 범죄를 방치한 정치적 책임과 그에 대한 시정 책임은 국가에 있다는 사실이 법규로서 확립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수많은 여성들의 희생과 여성운동의 노력 위에서 가능했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다. 

4대악 보험은 이러한 역사적 흐름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현재는 법규에 따라 피해자 의료비, 쉼터 등의 주거지원과 쉼터 안에서의 생활지원, 피해 상담과 치유 프로그램 지원 등을 국가가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정부 지원을 받아 소관 범위 내 19세 미만의 취약계층에 대해 이 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앞으로 성폭력 피해에 대해서는 보편적 지원이 아닌 특정 계층에 한해서 선택적으로 지원하게 될 가능성이 생겼다. 지방자치단체의 의무가입 대상이 모든 여성들로 확대될 경우에는 정부가 피해자 지원책임 전반을 민간 보험회사에 넘기게 될 수도 있다. 민간 보험회사의 4대악 보험 출시는 성폭력에 관한 국가의 시정 책임이 일정한 보험료 지급으로 대체될 수도 있을 가능성을 담고 있다. 개인 가입을 가능하게 하는 경우엔, 개인의 보험 가입 능력 여부에 따라 성폭력 피해 회복을 위한 재정적 환경이 달라질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현재보다 퇴행되는 것은 분명하다. 우려가 부지불식 간에 현실화돼 온 사례를 수차례 경험해온 여성계가 4대악 보험 출시를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대해상이 사업성에 기초해 4대악 보험을 상품으로 개발했다고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이 보험이 정책성 보험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만약 정부가 대통령의 국정과제인 4대악 척결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자 한다면, 민간보험에 지원할 보험료만큼 피해자 지원을 확대하면 된다. 그것이 지금까지 여성폭력 근절 의지에 부합하는 진정성 있는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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