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삶과 사랑

1962년 1월, 37년간의 유랑생활 끝에 고국으로 귀환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는 창덕궁 낙선재에 앉아 하나뿐인 핏줄을 그리워한다. “울지 마라, 사랑하는 내 딸아. 엄만 여기 있단다. 이렇게 널 기다린단다.” 딸 정혜, 또 다른 이름 마사에를 향한 어머니의 애끊는 모정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뮤지컬 ‘덕혜옹주’의 마지막 장면이다. 

1912년 고종황제의 고명딸로 태어나 1925년 일본으로 강제 연행, 1989년 눈을 감기까지 한 많은 삶을 살았던 여인 ‘이덕혜’가 무대를 통해 되살아났다. 덕혜옹주와 그녀의 딸 정혜를 오가며 1인2역을 맡아 혼신의 연기를 선보인 배우 문혜영은 말한다. “뮤지컬 ‘덕혜옹주’는 사랑이다. 사람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 그것도 늘 공기처럼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신의 선물 아닐까?” 그렇다. 뮤지컬 ‘덕혜옹주’는 격동기를 살았던 덕혜와 일본인 남편 소 다케유키, 딸 정혜를 중심으로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의 가치를 전하는 작품이다. 

극은 딸 정혜의 실종에서 시작된다. 결혼 이후 행방불명된 정혜를 애타게 찾는 아버지 다케유키. 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는 덕혜와의 결혼, 정혜의 탄생과 성장, 결혼 등의 기억을 따라가며 정혜가 사라진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는 다케유키의 회상에 따라 과거와 대과거를 오가며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강제로 고국을 떠나 점점 미쳐가는 덕혜옹주로 분한 배우 문혜영의 신들린 연기는 극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린다. “보고 싶어요 아바마마. 가고 싶어요 집으로. 반드시 돌아갈 수 있겠죠.” 눈물로 떠나온 고국을 그리워하는 덕혜의 슬픔은 일본 도쿄역에 처음 발을 내딛는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내가 누군지 잊지 않겠어. 당당해야 해. 끌려온 것처럼 보여선 안 돼.” 환영 인파 앞에서 당당히 손을 흔들며 웃는 덕혜. 자신 앞에 놓인 끔찍한 운명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그녀의 처절한 몸부림에 가슴이 아려온다. 고종황제의 죽음 앞에 모든 걸 놓아버리는 순간은 비극이 최고조에 달한다. 기모노가 아닌 색동 한복을 입고 고향땅을 밟지만 자신을 사랑해주던 ‘아바마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가슴에 맺힌 한을 광기 어린 슬픔으로 토해내는 문혜영의 연기는 일품이다.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는 딸 정혜를 생생하게 표현해낸 것도 배우 문혜영의 몫이다. “사람들은 날 아는데 난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너무나 익숙한 이 외로움. 내 안에 커져가는 엄마의 병.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어머니 덕혜를 향한 딸 정혜의 사무친 그리움은 어른으로 성장해 결혼과 임신을 경험하며 절정에 이른다.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운명에 맞선 여인 ‘이덕혜’의 비극적인 가족사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덕혜옹주의 학교 생활과 황실 사진 30여 점을 볼 수 있는 ‘뮤지컬이 역사를 만나다’ 사진전도 공연과 함께 진행 중이다. 성수아트홀에서 오는 6월 1일까지 관객들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