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탯줄을 품고 있는 명작 같은 사원

어느 강연에서 유홍준 교수는 명작의 조건으로 시공을 초월하는 아름다움과 국제성, 보편성을 들었다. 나는 여기에 작품이 영혼의 탯줄을 품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대부분의 명작은 생명과 생명을 이어주는 영혼의 탯줄을 품고 작가를 떠나서 관객의 감동을 먹이로 스스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100여 년 전 남녀의 격정적인 사랑을 표현했던 조각가 로뎅의 작품들은 노익장의 조수였던 젊은 시인 릴케에 의해 릴케의 로뎅으로 피어났고, 릴케의 로뎅은 나에게 다가왔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미셸 콜롱브(1430~1521년·프랑스의 조각가)의 말을 인용하며 로뎅의 작품을 소개했다.

“실컷 보아라. 친구들의 아름다운 작품을, 바라보아라. 신을, 그리고 사랑하라. 그러면 너는 위대한 사물들의 은총을 얻을 것이다.” 위대한 사물들의 은총을 얻을 것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내면이 모든 생명들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느닷없이 알아차리고, 작품이 은총을 느끼게 하는 위대한 사물이라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때 사람들은 감동이라는 단어를 쓴다. 작품은 사람과 사람의 영혼을 이어주고 사람은 감동으로 작품의 생명을 연장시킨다. 이것이 명작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명작처럼 느닷없이 삶의 시선을 바꿔주는 풍경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 지난 겨울 인도에 있는 카주라호 사원들은 나에게 그 감동에 휘어 감기는 행운을 부여했다.

인도 북부 마디아프라데시주의 북단에 위치한 힌두교 사원들이 밀집돼 있는 카주라호는 인구 7000명이 조금 넘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그러나 14세기 무굴제국에 함락당하기 전까지는 찬델라 왕조(950~1050)에 의해 세워진 사원들이 자그마치 80여 개가 넘을 정도로 번창했던 고도(古都)였으나 현재는 무굴제국에 의해 무차별하게 파괴되고 20여 개의 사원들만 남아있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사원은 198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 에로틱 사원으로 소문이 나면서 여행객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가이드는 카주라호에 있는 사원들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탄트리즘(Tantric school)의 영향을 받은 찬델라왕조가 굽타시대에 쓰인 사랑의 지침서 ‘카마수트라’를 바탕으로 외벽에 미투나상(산스크리스트어로 한 쌍의 남녀, 나아가 성적 결합을 의미)을 조각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일반적인 견해라며 대표적인 미투나상들을 지목했다. 수년 전 헌책방에서 우연찮게 신윤복의 춘화(春畵)를 보았을 때 민망한 마음으로 책을 덮어버렸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신윤복의 춘화가 무색할 정도로 표현된 성행위 장면들이 어찌나 적나라한지 설명을 듣고 있기가 거북했다. 은밀하게 그려지고 은밀하게 보여지는 것이 춘화의 특성이거늘 어쩌자고 그 옛날 인도의 권력자들은 수많은 석공들에게 허구한 날 섹스 장면을 조각하도록 명령했단 말인가. 그것도 신들이 사는 경건한 집 사원에 말이다. 처음에는 정말 민망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힌두교에서는 성적인 에너지를 신성함의 상징으로 여긴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퍼뜩 스친 생각은 그 옛날 석공들은 지금의 내 생각과는 달리 기도하는 마음으로 미투나상을 만들었을 수도 있었겠구나라는 것이었다.

외벽에 미투나상이 벽띠처럼 둘러쳐진 사원을 돌면서 인도철학사의 저자 길 선생님은 힌두사원 건축양식의 상징성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주셨다. “신을 모신 곳이 어두컴컴하고 가장 내밀한 곳인데 그 곳을 태아방이라고 하지요. 태아방은 우주를 상징하는 첨탑과 이어져 있고 어두컴컴한 태아방에서 궁극의 우주로 올라가는 중간 지점이 부풀려지면서 공간이 생겼습니다. 그 공간은 삶을 의미합니다. 삶을 상징하는 이 중간 지점을 미투나상으로 장식한 거지요. 탄트라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섹스는 궁극의 것을 만나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이곳의 미투나상들은 생명을 잇는 행위로서 삶의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조각된 것이 아닐까라고 나는 추측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미투나상을 삶의 에너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성적 욕구는 본능이다. 동물들의 교미는 종족보존 때문이지만, 사람에게 섹스는 일단 쾌락의 도구로 인식되는 것이 다르다. 해서 쾌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그야말로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오르가즘을 깨달음의 요가로 활용하는 탄트리즘처럼 영혼의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도 있는 것, 섹스라는 단어 자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민망해했던 좁은 소견에서 벗어나 탄트리즘의 뜻을 헤아리며 미투나상을 바라보니 민망함이 스러지고 섹스가 건강한 삶의 에너지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는 듯 싶었다.

힌두교 사원을 벗어나 동부 사원군에 위치한 자이나교 사원을 찾았다. 경내로 들어서면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쫓아가 보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자이나교 사두(sadhu·남자 성자)가 유유히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사두는 삽시간에 몰려든 여행객들의 시선에 아무런 동요도 없이 천천히 방으로 들어가서는 빗자루로 청소한 후 가부좌를 틀었다. 해프닝처럼 순식간에 펼쳐졌다 스러진 풍경을 뒤로하고 법당에 들어서니 사두를 닮은 나체의 조각상들이 곳곳에 모셔져 있었다. 서부 사원에서 보았던 에로틱한 느낌의 미투나상들이 아니라 벌거숭이 나체상을 모셔놓은 법당을 둘러보고 나오니 붉은 노을에 사원이 잠겨들기 시작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서둘러 버스에 올라타고 나서야 비로소 좀 전에 보았던 나체의 사두를 보고도 마음에 아무런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과연 서울 한복판에서 나체의 사나이를 만나도 그런 감정이 들까? 완벽하게 한 그루 나무처럼 사물로 보였던 나체의 사두가 신기해서 상상해보니 서울에서라면 전혀 다른 감정이 일어날 것이 확실했다.

같은 대상도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읽힌다는 사실은 촬영을 통해 허구한 날 느끼는 일인데 새삼스럽게 놀라면서 섹스를 욕망의 제어장치인 금기(禁忌) 속에 가둬놓았던 나의 고정관념이 카주라호를 떠나는 버스 안에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금기를 넘나들 수 있는 자유의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된 공간, 카주라호 사원의 미투나상들을 통해서 나는 자유에 대한 개념을 다시 한 번 정립하는 기회를 가졌다. 자유는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마음 작용이다.

석양에 스며드는 사원을 뒤로한 채 카주라호를 벗어난 일행은 가이드의 지인인 브라만 가정집에 초대를 받아 300년 전에 지어졌다는 전통 가옥을 방문했다. 300년이란 세월 동안 한 공간에서 한 핏줄이 이어져서 삶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반향을 일으키며 마음을 흔들었다. 차를 마시며 수인사를 나눈 후 주인은 우리를 사당으로 안내했다. 300여 년의 세월이 고여 있는 우물 같은 공간에서 흐르던 기운이 주인장의 얼굴과 몸짓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공간은 경건한 분위기로 바뀌었고,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내 마음을 뚫고 들어왔다.

사원이 국민들이 모시는 신들의 궁전이라면 사당은 한 집안에서 모시는 신의 집이다. 신을 중심으로 한 핏줄이 긴 시간 동안 한 공간에서 삶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충격처럼 다가온 집에서 나오자 들에 나갔던 아낙들이 머리에 나뭇짐을 이고 동네로 돌아오고 있었고 멀리서 염소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이방인들의 갑작스런 출현에 들뜬 아이들은 우리 뒤를 쫓아오면서 수다를 떨었다. 길 한쪽에서는 갓 태어난 듯 온몸이 젖어 있는 새끼 송아지가 엄마 젖을 빨고 있었다. 이 공간에서의 삶은 이렇게 300년, 아니 30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왔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이미 날은 완전히 저물었고 깜깜한 거리를 달리는 버스 안에는 마치 시공간이 사라진 듯 깊은 침묵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