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엄마들 모유수유실도 필요”
‘엄마 학생’들을 위한 하드웨어는 여전히 부실하다. 어린이집은 대기자가 많아 이용이 불가능하고 시간제 보육시설은 아예 없는 실정이다. 또 모유수유실을 설치하지 못한 대학이 대부분이다. ‘엄마 학생’들은 아이 맡길 곳을 못 구해 피치 못해 학교에 데려올 경우 모유수유실이나 휴게 공간이 없어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서울대 부모협동조합 ‘맘인스누’ 서정원 대표는 “두 아들을 낳고 키우면서 화장실에서 모유수유를 했다”며 “여직원‧여학생 휴게실 합쳐 8곳인데 임신부나 ‘엄마 학생’들이 아이와 함께 쉴 만한 휴게 공간이 한 곳도 없다. 여학생 휴게실은 환기가 안 되는 지하에 있다. 심지어 세균 보관실 옆에 있는 데다 일부 흡연하는 여학생들 때문에 아이와 함께 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맘인스누는 휴게 공간이 확보되면 수업 시간에 아이를 대신 맡아주는 자조모임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맘인스누의 노력으로 서울대는 지난 3월부터 임신부 진단서가 확인된 학생에게 장애인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영유아 동반 학생이 중앙도서관 대출실을 직접 방문해 원하는 자료를 요청하면 담당 직원이 책을 가져다주는 대출 서비스도 시행한다.
이공계 ‘학생 엄마’들이 겪는 어려움은 더 크다. 국립대 박사 수료생인 A씨는 “프로젝트 책임자인 남자 선배로부터 내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지도교수가 내게 말도 안 하고 프로젝트에서 제외하더라”며 “이공계 연구실에서 대학원생들은 일하는 사람인 데다 남성 중심 조직이라 ‘임신부는 같이 일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B씨는 “랩(실험실) 미팅을 어린이집이 문을 닫는 토요일 오전에 잡는 경우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남성 중심적인 대학문화 개선이 절실하다. 어느 대학원 교수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모유수유를 해야 하는 엄마에게 술을 강권했는데 당사자가 모유수유 중이라고 양해를 구하니 “그럼 젖을 안 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 경우도 있다. 국립대 미대 박사과정을 휴학 중인 김선아(가명)씨는 “일부 남자 교수들은 출산과 육아를 하는 연구원을 이해하지 못하고 ‘느슨해졌다’는 시선으로 본다. 심지어 지도교수가 거부해 중간에 교수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교육학 박사과정 중인 최근정씨는 “여자대학에서 여성 리더십을 강조하면서도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들에 대한 관심이 희박하다”며 “공부하는 엄마들이 설 자리는 결국 휴학뿐이더라. 주변을 보면 아이 둘 낳고 키우느라 7년씩 경력단절을 겪더라.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어린이집에 보낼 나이가 돼야 학교로 돌아올 수 있다. 고등교육을 받는 ‘엄마 학생’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