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보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애들도 다 큰 셈이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전처럼 명절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과거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보리는 명절만 되면 ‘외갓집에 빨리 가자’고 졸라댔다.
대전에서 제사를 지내고 다함께 식사를 마칠 즈음부터 언제 논산(외갓집)에 가냐는 보챔이 시작됐다. 하도 그러다보니 누나와 여동생 식구들을 보지 못하고 떠난 적이 더 많았다.
심지어 대전 외곽인 유성 절에 모신 부모님께도 들르지 못하고 가기도 했다. 대전 집에 더 있다 가자고 버텨보기도 했지만 4대 1의 대세를 거스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아이들이 외갓집을 더 좋아하는지를 생각해 봤다.
‘농촌 분위기가 좋으니까….’
대전 부모님 집은 마당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고, 집도 좁다. 그에 비해 처갓집은 마당이 꽤 넓고 방도 여럿이다. 마당에서 배드민턴도 칠 수 있다. 밤, 호두, 오디 등 딸 것도 많다.
‘어르신들도 관대하시지….’
대전 할머니 할아버지와 큰아빠 고모들은 아이들에게 이른바 밥상머리 교육을 많이 한 편이다. 아이들이 내 무릎이나 어깨에 기대는 것도 못하게 했다.
‘논산에서는 지들이 왕초노릇을 하니 좋겠지.’
나는 5남매 중 넷째다. 아내는 5남매 중 맏이다. 그러니 논산에 가면 우리 아이들이 아이들 분위기를 주도한다. 특히 보리가 그랬다. 보리 밑으로 사촌 여동생 넷이 있는데, 보리가 연극단 단장이 되어 공연을 만들곤 했다. 건넌방에서 꽤 오랫동안 각본을 짜고 연습을 해서 무대에 오르곤 했다. 때로는 하다가 중단하고 다시 건넌방으로 가서 다듬어 공연을 하곤 했다. 그런 애들의 재롱을 보며 어른들은 한바탕 웃곤 했다.
여기까지가 그 당시 내가 생각한 거였다. 그런데 최근 아이들의 대화를 들으니 그보다 좀 더 중요한 게 하나 더 있었다.
“빨리 가야 어르신들한테 용돈을 더 받을 수 있어” 막내 보리의 말이다.
장인은 9남매의 맏이고, 아직도 내일 모레면 백세가 되는 어머님을 모시고 산다. 그러니 명절 때 대전에서 빨리 논산으로 가야 그 친척들한테도 용돈을 받는다는 것이다. 최전성기가 아마 보리가 초등학교 오륙학년이었을 때고 그 즈음 나는 몇 번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던 아이들이 제법 커버리니 ‘득윤리 악단’은 잊혀진 얘기가 돼버렸다.
명절 때마다 보던 아이들의 공연
우리 아이들은 있어야 할 친척들은 다 있는 셈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큰아빠와 고모들 외갓집으로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고 외삼촌들과 이모들이 있다. 어릴 때부터 친척 어른들의 사랑을 받으며 컸다. 사랑과 용돈이 비례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용돈도 꽤 많이 받으며 컸다. 이웃사촌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했어도, 부모님 생신과 여름휴가 때도 만났으니 나름 적지 않게 만났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멀리 강화도에서 대전이나 논산까지 가야 한다. 아주 먼 거리는 아니지만 서울을 거쳐 가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여행길이었다. 게다가 차도 큰 차가 아이었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는 '티코'에 다섯 식구가 타고 다녔다. 먼 여행길에 아이들이 잠들 때 편하라고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를 판대기로 평평하게 해주곤 했다. 그래도 좁다고 많이 다퉜다. 특히 가운데 자리를 서로 앉지 않으려고 했는데, 둘째 온달이가 그 자리에 가장 많이 앉았다. 그랬던 애들이 이제 제법 커서 덩치가 커졌는데도 그때 티코와 거의 크기가 같은 '스파크'를 탔는데도 자리다툼을 하지 않았다.
‘녀석들, 이제 마음도 커졌군.’
다른 다툼도 거의 없어졌다. 다들 제 생활하기에 바쁘다. 유학준비, 군생활, 사회진출 등 다 나름의 과제를 안고 있다. 이제 어른들 사랑은 다 받았기에 사랑을 할 때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