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정치참여와 정치세력화를 막는 불평등 구조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암 덩어리

지난 9일 뉴욕 맨해튼에서 개막된 ‘아모리쇼’(The Armory Show)를 가족과 함께 참관할 기회를 가졌다. 이 쇼가 각광받는 이유는 뉴욕에 현대미술을 처음으로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에드가 드가, 폴 세잔, 파블로 피카소 등 거장들이 참여하면서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

이 쇼의 창설자 필 모리스는 “독특한 시각을 가진 뛰어난 기존 작가와 신진 작가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주목 받는다”고 설명한다. 이번 아모리쇼에서는 2000여 명의 아티스트가 참가해 독특한 자신들의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기발하고 놀라운 ‘창조적 상상력’(creative imagination)에 바탕을 둔 작품들을 접하면서 “이런 것도 작품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나도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세계 각국에서 참여한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것도 큰 기쁨이었지만 다른 요인이 사람들을 크게 매료시켰다.

첫째, 형식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스러움이다. 갤러리들은 작품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놀이터와 같이 공간 자체를 음미하면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하루종일 작품을 즐기는 것이 이채로웠다. 엄숙하고 격조 높은 쇼룸이 아니라 생동감이 넘쳐 흐르는 만남과 소통의 장소였다. 둘째, 정형화된 사고의 파괴다. 아모리쇼가 열린 곳은 맨해튼 서쪽 허드슨강가 부둣가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이 결합돼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것을 ‘하이 콘셉트’(high concept)라 명명했다. 부둣가와 현대미술이 만난다는 것이 다소 어색해 보이지만 오히려 묘한 매력을 발산하기에 충분했다. 부둣가 공간에서 또 다른 아트 공간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셋째, 아모리쇼는 좋은 작품을 만든 작가를 발굴하는 딜러와 갤러리 능력이 돋보였다. 이것이 아트페어의 성공과 직결되는 것 같았다. 

이제 한국 정치로 시선을 돌려보자. 한국 정치는 생동감도, 사고의 파괴도, 능력도 없다. 그렇다보니 감동도 희망도 없다. 오직 정치에 대한 피로감과 혐오감만 있을 뿐이다. 양성평등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에서는 자신들이 필요할 때마다 앞다퉈 양성평등을 들먹인다. 심지어 새 정치의 과제라고 주장한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주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에 참석해 “‘새 정치’를 여성과 함께 시작한다”며 “여성이 행복한 사회, 다같이 행복한 양성평등 사회를 만드는 데 열심히 뛰겠다”고 했다. 새정치연합 안철수 중앙운영위원장도 “여성이 편한 사회는 모두가 편한 사회”라며 “여성 지위가 제대로 서는 것이 그 사회의 품격을 나타낼 수 있는 만큼 열심히 (그런 사회를)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이들의 발언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 지켜보겠지만 그리 기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통합 신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역구 여성 30% 할당’ 등 여성들의 대표성을 제고하기 위한 공천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의지가 그리 강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각종 규제를 언급하며 “암 덩어리, 쳐부술 원수”라는 격한 말을 토해냈다. 심지어 ‘불타는 애국심’을 주문하기도 했다.

제5차 무역투자진흥회의·지역발전위원회 연석회의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운명이 달라지고 또 우리 미래 세대가 정말 발전한 나라를 우리로부터 이어받느냐, 그냥 발전하다 쪼그라들어서 정말 못난 선배들이 되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절박한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을 갖고 임해달라”고 했다.

박 대통령의 이런 언급들을 양성평등에 적용해보자. 여성의 정치참여와 정치세력화를 막는 각종 불평등 구조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암 덩어리다. 대통령과 정치권이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가 실질적 양성평등을 이뤄 여성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느냐, 아니면 과거와 같이 남성 지배적 구조 속에서 여성의 잠재력이 무시되는 후진 사회로 주저앉느냐가 결정된다. 누구나 말로는 양성평등을 외칠 수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실천이다. 아모리쇼에서와 같이 정치권도 기존 문법을 파괴하는 창조적 혁신을 통해 실질적 양성평등을 가로막는 암적인 장애물을 제거하는 마지막 기회에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 여성이 행복한 시대가 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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