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전문의 출신… 라틴아메리카 최초 여성 국방장관
군부에 의해 아버지 잃고 정치 시작
보복 대신 개혁으로 군부 지지 이끌어내

 

칠레 우먼파워의 상징인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앞줄 가운데)이 11일 의회에서 취임식을 갖고 있다.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
칠레 우먼파워의 상징인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앞줄 가운데)이 11일 의회에서 취임식을 갖고 있다.
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
ⓒmichellebachelet.cl

현지 시각으로 11일 산티아고에서는 칠레의 새 대통령인 미첼 바첼레트의 두 번째 취임식이 열렸다. 칠레 정치권에 여성시대가 활짝 열렸다. 연임 제도가 없는 칠레에서 바첼레트가 민주화 이후 최초로 재임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살바도르 아옌데 전 대통령 딸 이사벨 아옌데 상원의원이 1일 상원의장에 취임했기 때문이다.

칠레에서 여성파워 시대는 어떻게 열리게 됐나. 기본적으로 여성교육의 확대와 빠른 사회진출이 바탕이었고, 정책과 제도도 많은 뒷받침이 됐다. 민주화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이 두드러지면서 민주화 이후 여성정책 전담기구 수립을 통해 여성정책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집권 1기를 통해 내각의 절반을 여성으로 구성하는 등 공직에서 여성 비율을 확대한 정책도 이러한 여성시대를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칠레 여성운동단체들은 이를 ‘바첼레트 요인(Bachelet Factor)’이라고 부른다. 그 결과는 사회문화 변화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가톨릭 전통과 보수적 성향이 짙은 국가에서, 과거라면 간호사나 교사를 꿈꾸던 어린 여자아이들이 이제 대통령을 희망하고 있다.

1기 대통령 임기 말, 바첼레트 지지도는 80%에 달했는데, 이러한 높은 지지도는 곧 야당의 지지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재임 가능성도 매우 높게 평가됐다. 그러면 바첼레트가 어떠한 리더십을 가졌기에 국민으로부터 이러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바첼레트의 삶은 우선 강인한 리더십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피노체트의 쿠데타 이후 군부에 의해 아버지를 잃게 된 후 정치활동에 가담했다. 바첼레트는 대학 안팎에서 사회주의청년단 활동과 수배자들을 돕는 반정부활동을 하다 추방됐다.

이후 호주와 동독 등을 전전하면서 의학 공부를 계속해 소아과 전문의가 됐다. 귀국 후에도 반정부활동을 지속했으며, 문민정부가 수립된 후 사회당의 수뇌부에서 활동했다. 의사로서 보건분야 전문성을 가지면서도 군사학교에서 수학한 경험을 통해 군사분야 전문성도 갖추게 됐다. 그 결과 보건장관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이 될 수 있었다. 국방장관으로 임명되고 얼마 되지 않아 발생한 대규모 수해 사태에서 구제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장면들이 방송으로 공개됐다. 이는 국민의 여성 국방장관에 대한 우려를 일시에 불식시키면서 군부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또 바첼레트는 자신의 가족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군 고위인사들에 대한 보복 대신, 대대적인 군 개혁을 실시해 보다 효율적이고 현대적인 군대로 변모시키면서 군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대통령에 첫 출마 당시 바첼레트는 자신이 미혼모였고, 이혼녀이며, 세 자녀를 둔 엄마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드러냈다. 이는 대통령이 보통의 칠레 엄마, 칠레 여성의 입장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들을 위한 정책을 반드시 실시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여성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취임 직후부터 이어진 교육 시스템 개혁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 구리노조의 파업, 산티아고 교통 시스템의 문제 노출 등의 위기 상황은 그의 리더십을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그는 시위나 사회적 갈등 상황을 회피하기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으로 활용했다. 선거공약 이행을 위해 10개의 대통령직속위원회를 통해 연금개혁, 여성할당제, 경제정책 등 주요 사안들을 다루고 의회에 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민주화 이후 실시돼왔던 정당연합(콘세르타시온) 내의 ‘정당 간 협의’가 상실됐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즉각 매주 정당연합 소속 정당 대표가 참여하는 ‘정치위원회’를 개최해 정책을 논의했다. 이러한 시도는 칠레에서 처음으로, 바첼레트의 수평적이고 상호적, 포용적인 리더십이 반영된 것이었다. 구리의 국제가격이 올랐을 때, 야당과 노조가 이익 배분을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바첼레트는 이를 탁아소 건립 등 사회복지를 위해 활용했다. 경기쇠퇴 국면에서 강력한 경기부양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는 등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실용적 정책을 펼친 것으로 평가된다.

퇴임일을 며칠 앞두고 발생했던 대규모 지진사태 때도 지진이 발생한 지역의 불안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소매점에 무상으로 시민들에게 생필품을 제공하도록 조치하는 등 발빠른 대처는 임기 마지막 순간까지 바첼레트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를 공고하게 만들었다.

퇴임 후 4년간 유엔여성기구(UN Women) 총재를 역임하고 다시 칠레의 대통령으로 돌아온 바첼레트는 새 임기 동안 사회적 불평등 완화를 핵심으로 하는 대학 무상교육 확대와 연기금 확충, 조세·선거제도 개혁, 개헌 추진을 약속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