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는 여성과 아이들"
“군사주의는 곧 남성지배 체제”

 

(위) 9.11테러 후 미국이 보복공격을 천명하자 아프간과 미국 여성단체는 일제히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신문 속 사진은 미국의 전쟁 반대를 소망하며 명동성당 침묵시위에 나온 한국 여아 (아래) 2010년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들이 전쟁 반대를 외치며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위) 9.11테러 후 미국이 보복공격을 천명하자 아프간과 미국 여성단체는 일제히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신문 속 사진은 미국의 전쟁 반대를 소망하며 명동성당 침묵시위에 나온 한국 여아 (아래) 2010년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들이 '전쟁 반대'를 외치며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 여성신문DB

2001년 9월 11일 오전 9시. 세계 경제의 중심지 뉴욕에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항공기를 납치한 이슬람 테러조직 알카에다 대원들이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미 국방부 청사를 무너뜨린 것. 무고한 시민 35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은 분노했다. 감정이 격해진 미국인들은 아랍계 시민들의 비행기 탑승을 막거나 차별·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당시 미국의 수장을 맡고 있던 조지 부시 대통령은 참사 3일 만에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우리에게 협조하지 않으면 ‘적’으로 규정하겠다”고 천명했다. (2001.9.28 제644호) 미국 기업인들은 부시를 적극 지지하며, 부정적인 보도를 내놓는 언론에 광고를 주지 않았고, 부시를 비판하는 저널리스트들을 해고됐다.  

한국사회도 들끓었다. 한국언론은 미국 CNN 방송을 그대로 가져와 보도하며 분노에 휩싸인 앵무새를 자처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의 요청이 있기도 전에 “전폭적인 지지를 표하며 필요한 모든 협력과 지원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광화문에서 열릴 예정이던 ‘전쟁 중단’을 위한 23개 시민·사회단체의 기자회견은 경찰의 무력진압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전세계가 미국 눈치를 보며 전쟁참여와 국익의 저울질을 시작하고 있을 때 여성들이 나섰다. '전쟁은 다른 테러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미국 여성단체 FMF(Feminist Majority Foundation)는 “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는 여성과 아이들이 될 것”이라며 자국의 보복전쟁 선언에 항의했다. 이들은 “아프간 여성들과 아이들의 문제가 이번 사태에서 절대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되어선 안 된다”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2001.9.22. 제644호) 필리핀 여성단체들은 “우리는 부시 편도 빈 라덴 편도 아니”라며 부시 정권의 편가르기를 비판했다. 이어 “전쟁이 일어나면 여성들과 아이들만큼 피해를 볼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남성들이 그들의 무기에 의지하는 동안 평화는 현실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여성들은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불안을 남성들의 손에 맡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시가행진을 벌였다. (2001.10.05. 제 645호) 영국  평화운동가 구엔 커크, 마르고 오카자와 레이는 “여성들은 남성들이 만든 군사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아들을 전쟁터에 내보내는 자랑스러운 어머니로서, 남편의 귀환을 기다리며 인내하는 아내로서, 남성을 다시 전장에 나설 수 있도록 치료하는 간호사로서, 휴식과 오락을 제공하는 술집여성으로서 형상화 된다”면서 “군사주의는 곧 남성지배 체제”라고 지적, 전세계를 군사주의로 몰고 가려는 부시 정부의 행동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2001.10.05. 제 645호) 

한국여성들도 나섰다. 13개 여성단체들은 명동성당 앞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침묵시위를 벌이는 등 전쟁반대 대열에 동참했다. (2001.9.22. 제644호) 여성신문은 여성주의 웹진 ‘언니네’, 한국여성 성적소수자 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 등와 함께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 ‘WAW’를 발족했다. WAW는 “‘노벨평화상은 영광인 동시에 무한한 책임의 시작’이라고 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수상연설을 기억한다”며 “이제 그 무한한 책임을 져라. 일차적으로 부시 행정부의 전쟁범죄 수행에 대한 지원 계획을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1.10.05. 제645호 )

당사자인 아프간 여성들은 “반테러리즘 앞세운 살인을 멈춰야”한다며 오열했다. 아프간여성혁명연합 RAWA는 “아프간을 공격하고 대부분 빈한한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결코 미국인들의 슬픔을 감소시키는 방법이 아닐 것”이라며 “우리를 간섭하지 말고 그대로 놓아두라”고 호소했다. (2001.9.28. 제644호)

여성들의 외침은 남성 중심의 전쟁·폭력 문화에 의해 철저하게 묵살됐다. 미국은 아프간 전쟁에 이어 2003년 이라크 전쟁까지 일으켰다. 미국의 통제로 민간인 희생자들의 통계 규모는 발표되지 않았다. 단발성으로만 ‘미국의 오폭으로 민간인 사망’ 관련 기사를 접할 수 있었다.

미국의 아프간 전쟁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2002년 6월 과도정부가 들어섰고, 2004년 친미 성향의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당선됐다. 9·11테러 기획자로 알려진 오사마 빈라덴이 2011년 잡혀 처형됐지만 미국은 아프간 땅을 뜨지 않았다. 오마바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2014년 아프간 전쟁 종전’을 선언했지만, 언제 어떻게 이뤄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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