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장관되니 두 딸이 안티 많다고 걱정했죠”

정부 부처 가운데 예산과 인력이 가장 적은 ‘미니 부처’인 여성가족부에 여성 대통령 시대 첫 여성 장관으로 임명된 조윤선(48) 장관. 많은 주목을 받는 자리에서 지난 1년간 비교적 성공적으로 부처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정부 합동으로 성폭력·가정폭력 방지 종합대책, 직장어린이집 활성화 방안 등 굵직한 정책을 연이어 발표했고, 얼마 전에는 부처별 국정과제 평가에서 여성가족부가 국방부에 이어 정부 부처 중 두 번째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만화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러나 성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성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고 고되다. 20~30대 여성들은 여전히 육아 때문에 일을 포기해야 하고, 취업부터 승진까지 여성의 사회진출을 옥죄는 차별도 그대로다. 최근 드러난 군대 내 성차별이 이런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부 고위직의 연이은 성추행 사건도 여전히 남아 있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지난 2월 21일 오후 서울 청계천로 여성가족부 청사에서 만난 조 장관은 여성가족부 수장으로 보낸 첫 1년과 핵심 현안 그리고 여가부의 과제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대선 유세 때만큼 바쁘지만 보람 커

“지난 1년은 정말 바쁘게 보냈다. 지난 대선 기간 막바지에는 하루에 10곳 정도 유세를 다녔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3일은 그 정도로 바쁘게 지낸다.(조 장관은 2012년 대선 때 중앙선대위 대변인을 맡았다.) 공무원 생활을 처음 하다 보니 앞에 무슨 일이 닥칠지 몰라 무작정 달려왔던 것 같다. 정신없이 바빴지만 현장에서 정책이 집행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람도 많이 느꼈다.”

조 장관은 지난해 3월 취임 직후 가진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고 조율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본래 여성가족부의 역할이지만 예산과 인력이 적은 부처로서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여가부는 다른 부처와의 협업이 전제돼야 가능한 업무가 많다. 그래서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해에는 우리 부가 일·가정 양립 정책을 잘 수행해서 부처별 국정과제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는데, 경제관계 부처들의 도움으로 얻은 결과여서 (여가부만 좋은 점수를 받은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경력유지·양육비 이행기관 설립 주력

여성가족부는 올해 △여성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사회 △여성·아동이 안심할 수 있는 사회 △청소년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주는 사회 △다양한 가족이 있는 그대로 행복한 사회 등 4대 핵심과제 아래 16개 실천과제를 추진 중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가족친화인증기업 인센티브를 늘리고, 여성의 재취업을 돕기 위해 여성새로일하기센터도 유형별로 다양해진다. 한부모 가족이 이혼하면서 약속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전 배우자로부터 양육비를 받아내도록 돕는 ‘양육비 이행 지원기관’의 설립도 추진한다. 양육비를 받기 위해 여러 번 소송을 해야 하는 한부모 가정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다.

“작년에는 양성평등을 위한 제도와 성폭력·가정폭력 정책에 초점을 맞췄다면 올해는 우리 사회를 풍요롭고 기회가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에 주력할 계획이다. 특히 현안인 경력단절 예방에 비중을 뒀다. 경력단절 이후 재취업에 초점이 맞춰졌던 여성 일자리 정책이 처음으로 경력단절 예방으로 바뀌었다. 최근 조사 결과 여성이 경력단절 후 재취업하면 이전보다 월평균 수입이 55만원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 관계 부처 합동으로 만들어낸 ‘일하는 여성을 위한 경력유지 방안’을 중심으로 각 부처가 여성의 경력유지를 위해 정책을 실행하고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여가부가 유기적으로 코디네이팅 하겠다.”

여가부는 여성의 경력유지를 위한 실행방안으로 아이돌봄 서비스를 맞벌이 가정과 한부모 가정에 우선 제공하기로 했다. 또 여성인재 활용과 양성평등을 위한 민관 협력 시스템인 ‘여성인재활용과 양성평등 실천 태스크포스’도 가동한다. 사회인식과 직장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가족친화인증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늘리고, 공공기관에 가족친화인증 의무화를 도입한다. 이미 경력단절된 여성을 위해서는 유형별 새일센터를 설치해 여성의 경력·전공·지역 특성에 따라 맞춤형으로 재취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여가부 업무가 너무 여성 일자리 지원에만 치우쳐 있다는 지적도 많다. 이에 대해 그는 “여가부의 역할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여가부는 2001년 여성부로 출범해서 이제 여성가족부로 이름과 성격이 달라졌다. 여성부는 시대별로 역할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호주제 폐지가 정책 우선순위에 있었고, 최근에는 경제부처 성격이 부여됐다. 스웨덴이 양성평등을 끌어올리기 위해 성평등부를 만들고 이후에는 사회통합부로 부처 역할을 바꾼 것처럼 여가부도 현안에 따라 진화하는 부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른 부처가 하지 않는 일을 여성부가 개척해서 해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조 장관은 여성가족부를 “평생교육부이자 고용정책부, 특수복지부”라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좀 더 국민이 따뜻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여가부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조 장관은 여가부 직원들에 대해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도 전했다. 전체 정부 부처 공무원 중 2% 인력과 전체 예산의 0.15%로 국정과제 10%를 하려다보니 정작 여가부 직원들은 일·가정 양립이 힘들다는 것. 그러면서 “국민의 행복을 위해 잠깐 희생한다고 생각해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뜨거운 호응 얻은 앙굴렘 ‘위안부’ 만화전

최근 유럽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프랑스 앙굴렘에서 열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만화기획전 ‘지지않는 꽃’은 민관 협업으로 얻은 성과 중 하나다. 여가부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한국만화가협회 등과 손잡고 10개월간 기획전을 준비했다. 행사 준비 당시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많았다. 정부가 나서서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면 외교문제로 비화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앙굴렘에 가기 전까지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때 발생한 홀로코스트 참상을 널리 알린 것이 유대인 감독들이 만든 영화였듯 문화가 가진 힘을 믿었다. 그러나 앙굴렘에 도착해서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우리 기획전을 무산시키기 위해 일본에서 축제 조직위원회에 압력을 가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전시 전날에는 파리에서 열리기로 했던 기자회견도 무산됐기 때문이다. 기획전이 취소되면 실망하실 할머니들 얼굴이 떠올라 내내 가슴을 졸였다. 함께 간 직원들에게는 조직위와 절대 협상하지 말고, 조직위가 원하는 대로 최대한 맞추라고 당부했다. 다행히 조직위는 우리 기획전의 진정성에 손을 들어줬다.”

그는 기획전 소식을 접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속이 다 시원했다”며 ‘나눔의 집’ 소장을 통해 보낸 칭찬 문자 얘기를 꺼내며 환하게 웃기도 했다. 조 장관은 특히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알리는 것이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사실을 왜곡해 알리는 것이 정치적이다”라고 말한 앙굴렘 조직위원회 아시아담당 니콜라 피네의 말이 가슴에 깊이 박혔다고 했다. 이 말에서 위안부 문제가 아픈 것이긴 하지만 드러내놓고 이야기해도 된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 여가부는 앞으로 문화제, 학술제, 공모전 등을 개최하고, 위안부 관련 기록을 모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도 추진한다. 생존해있는 55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도 모두 직접 만날 계획이다.

여성 고위직 늘면 경력단절 여성 줄 것

성공한 변호사로 ‘엄친딸’로 불렸고, 대통령의 측근으로 ‘실세 장관’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 그에게 최근 ‘현 정부 유일한 여성 장관’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여기엔 여성 대통령 시대에 여성 고위직 기용이 너무 적다는 비판이 섞여 있다. 111위인 성 격차 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도 여성 대표성 확대는 필수적이다.

“이제는 주요 기관과 기업에 인사 발표가 나면, 여성 임원 소식이 빠지지 않는다. 혹시 여성 인사 소식이 없으면 핵심이 빠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여성 대통령 탄생 후 나타난 효과라고 생각한다. 첫 여성 은행장이 탄생했을 때 대통령께 말씀드린 것이 있다. 여성 은행장은 유리천장만 깬 것이 아니라 젊은 여성들에게 희망을 보여준 것이라는 얘기였다. 30대 여성은 150만원을 벌어 그것을 베이비시터에게 지불해야 한다면 일을 포기한다. 하지만 힘들어도 조금 더 일하면 임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투자라고 생각한다. 그걸 통해 경력단절이 예방되고, 고용률 유지 효과도 나타난다.”

그는 여성이 노동시장 진입 단계에서 받은 차별을 철폐하는 것이 기존 양성평등 정책

m